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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농민운동의 뿌리를 찾아가는 ‘고막포 전투 기념제’...변혁의 정신을 되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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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무안농민운동의 뿌리를 찾아가는 ‘고막포 전투 기념제’...변혁의 정신을 되새기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행사 통해 1894년의 뜻 기려
무안고등학교 역사동아리 학생들, 폐정개혁 12조 낭독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을 권리는 현재도 절실한 과제

 


5호 8~9면 고막포 전투 1-2.jpg
극단갯돌과 무안고 역사동아리 가온누리 학생들이 고막포 전투를 재현하고 있다

 

 

  2019년부터 511일 황토현 전승일이 국가기념일인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5년 만에야 이뤄진 일이었다. 사람을 하늘처럼 받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아래로부터의 혁명. 민초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변혁을 꾀한 전무후무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 4.19혁명, 5.18광주항쟁, 6.10민주화투쟁까지, 이 나라 변혁운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26, 함평군 학교면 고막다리에서는 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유족회 주최로 무안동학농민혁명 고막포 전투 기념제가 열렸다. 기념제는 성균관대 배항섭 교수의 주제강연으로 시작하여 추모사와 분향 및 헌화, 고막포 전투 재연행사와 함께 동학농민혁명군의 넋을 기리는 진혼굿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사에는 배종열 무안동학농민혁명 유족회장, 박석면 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무안군청 부군수, 무안교육지원청 교육장 및 무안고등학교 학생들과 지역 주민 등 3백여명이 참여했다.

 

 

고막포 전투와 대접주 배상옥

 

  고막포 전투는 광주, 나주, 무안, 함평 일대의 농민군이 총집결하여 북쪽과 서남쪽에서 나주성을 공략한 대규모 공방전 와중에 일어난 전투로 무안과 함평지역 농민들이 주도한 전투다.

 

  이 전투의 중심에는 무안의 대접주 배상옥이 있다. 접주는 그지역의 동학도를 이끄는 최고 책임자를 뜻하는 말이다. 배상옥은 전봉준이나 손화중, 김개남과 같은 접주들과 같이 동학농민군의 주요 지도자였으나 그의 이름은 일제에 의해 철저히 지워졌다. 그런 연유로 다른 접주들과는 다르게 무안의 대접주 배상옥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삼향면 대월리에서 태어난 배상옥은 무안, 함평, 장흥, 해남, 강진, 영암지역의 동학교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전남지역 일대의 전투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당시 관군의 기록인 순무선봉진등록에는 무안은 거괴가 많고 그중에서도 배상옥·배규찬 형제는 무안의 거괴로 남도 연해지역에서는 괴수자라고 칭하며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최경선 등에 뒤지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안 대접주 배상옥과 무안-함평 일대의 농민군은 1117일 무렵 나주 외곽 30여리 지점에 있는 고막포(당시 무안현 금동면)과 고막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동학농민군 세력과 대척점에 있던 수성군은 무안 일대의 농민군을 공격하기 위해 포군 3백명을 인솔하여 농민군이 고막포에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고막포 전투는 18941118일 아침에 시작됐다. 수성군이 먼저 대포를 쏘고, 농민군 일부는 대포를 피해 산 아래로 내려가 사방에 불을 지르며 대응했다. 결론적으로는 농민군의 참패였다. 관군 측에서는 포환이 향하는 곳마다 적들이 죽었다. 관군은 기세가 올라 한명이 1백명을 감당하지 않은 이가 없었고 시체가 들판에 널렸다고 기록했다. 사람은 많았고 다리는 좁았다. 조수 때문에 물이 불어난 상황이라 수많은 농민군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

 

  기념제에서 주제강연을 한 성균관대 배항섭 교수는 나주성이 이 지역 농민군들을 진압하는 거점이었다. 그래서 수성군이라 불린 관군들을 무력화시키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북쪽으로 올라간 전봉준 부대는 우금치에서 전투를 하고, 이 지역에 있는 손화중, 최경선, 오권선, 배상옥 장군은 나주성을 공략하기 위해서 대대적으로 준비를 해서 공세를 취했다. 그때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 이 일대다. 고막교의 전투에서 농민군들이 많은 희생을 했다. 만약 고막교에서의 전투가 성공했더라면 관군에게 큰 타격을 줘서 전라도 일대의 농민군 활동이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의미가 있고 규모가 큰 전투였다는 것이다.

 

 

 

9면 고막포전투사진대체.JPG

 

 

동학농민혁명을 기억하는 하는 사람들

 

  1894, 풀을 베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사회를 고쳐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로 낫을 들었던 수많은 무안의 민초들은 고막교 다리에서 죽음으로 저항했다. 127년이 지난 지금, 대접주 배상옥과 그 민초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함평이 된 고막포에는 고막교 돌다리가 어떻게 지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는 안내판만 존재할 뿐 동학농민혁명군들이 이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치열하게 투쟁한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학혁명군의 후손들과, 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그러하다. 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10여 년간 학살된 동학혁명군들의 위령제를 지냈다. 박석면 이사장은 고막포 전투는 정말 큰 전투인데도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무안 농민군들이 주축이었음에도 그곳이 지금은 행정구역상 무안이 아니다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서 이제까지는 무안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그렇지만 올해는 고막포 현장에서 직접 추모제도 지내고 넋을 위로하는 진혼굿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고막포 전투 기념제 행사에는 무안고등학교 학생들도 함께했다. 무안고등학교 역사동아리 가온누리 학생들은 전주화약 때 동학혁명군들이 강화의 조건으로 초토사에게 제시해 새로 설치된 집강소에서 추진된 폐정개혁 12조를 낭독했다. 그 당시 농민들의 복장을 한 학생들은 개혁안을 당당하게 읽어나갔다. 또 극단 갯돌과 함께 고막교 다리 위에서 당시 고막포 전투를 재현하기도 했다. 무안고 1학년 이승준 학생은 역사동아리 활동의 연장선에서 동학농민혁명 재현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동학군으로 참여하게 됐는데, 재현행사 준비를 하며 동학농민군이 된 기분을 느꼈다. 동학농민혁명의 투쟁 정신을 계승하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동학농민혁명 127년 후 대한민국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검색 엔진 구글에 동학농민혁명이라고 검색하면 제일 먼저 뜨는 페이지는 위키백과에 올라와 있는 동학농민혁명 소개 문서다. 위키백과는 여러 국가에서 사용하는 웹사이트로, 인터넷을 통한 백과사전 구축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모든 이가 간소한 절차를 거치면 편집이 가능해 공신력을 인정하지는 않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이용하는 사이트이므로 전파력이 강하다.

 

  한국 위키백과 웹사이트의 동학농민혁명 문서의 첫 시작은 다음과 같다. “문재인 좌파정부 들어 농민혁명, 동학혁명, 동학농민운동 또는 동학농민전쟁으로 불리우기 시작한 동학난은 1894년 동학 지도자들과 동학교도 및 농민들에 의해 일어난 백성의 무장봉기를 가리킨다.” 또 이어지는 문서에서는 혁명은 계획적으로 모의되고 정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시행되고 성공한 것을 혁명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동학난은 혁명이라고 부르는 데 문제가 있다. 동학은 고종의 무능과 양반과 탐관의 학정에 시달린 농민들의 항거였지 계획된 혁명이 아니었다.”라고 동학농민혁명을 부정하고 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혁명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일이고, 사회변혁을 위해 기존의 체제를 전복시키는 일이다. 혁명은 사회가 비뚤어진 방향으로 걷잡을 수 없이 나아가고 있을 때, 이러한 사회를 스스로 고쳐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민중들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은 민초들이 모여 사회변혁을 꾀한 전무후무한 역사적 사건이다. 침략과 수탈에 맞서 아래로부터 시작한 혁명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기치 아래 동학 농민들은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며 피 흘려 싸웠다.

 

  혁명의 정의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동학농민혁명을 부정하는 한국 위키백과 동학농민혁명 문서 작성자처럼 한국 사회에는 그때 조선을 병들게 한 관리들만큼이나 사회에 폐단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과도 같은 자들이다.

 

  사회면에 날만큼 커다란 범죄를 저지르는 것만이 폐단은 아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전국 언론사들의 기사만큼이나 사회에 만연한 갑질’,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고 혐오하면서도 낯 하나 바뀌지 않고 당당하게 소리를 지르는 많은 이들, 3백킬로그램이 넘는 컨테이너 날개에 노동자가 깔려 죽어도 침묵하던 기업.

 

  지난 3개월 동안 574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었다. 한국에서는 연간 2천여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는다. 성 정체성 때문에 강제전역을 당한 변희수 하사는 지난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달 22일에는 공군 부사관이 숨진 채 발견됐다. A중사는 부대 내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했지만 군대 내에서 피해를 호소해도 돌아오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폐정 개혁 12조에는 이런 내용들이 있다. 횡포한 부호들을 엄징할 것 불량한 유림과 양반들을 징벌할 것 노비문서는 태워버릴 것 칠반천인(七班賤人)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 머리에 씌우는 평양립(平壤笠)을 벗게 할 것 청춘과부의 재혼을 허락할 것

 

각기 다른 항목이지만 이 조항들이 뜻하는 바는 같다. 사람은 곧 하늘, 그러니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군이 피 흘려 싸운 지 127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소외와 차별 속에서 고통받고 죽는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지금까지도 유효하며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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