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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환경정책’의 새 방향을 정립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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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농촌환경정책’의 새 방향을 정립해야 할 때다

농지에 태양광...손쉽게 먹으면 나중에 탈 나게 마련
방치된 영농폐비닐, 농지에 묻혀 토양오염 부채질
악취와 수질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축산분뇨
빈집과 농경지 한복판의 오염원 등 미해결과제 산적

김정섭박사.png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지난해 12월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흡수량을 늘려서, 30년 뒤에는 한국에서 ‘이산화탄소 장부’상 수치가 0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흑자는 어려워도 최소한 본전치기는 되게 만들겠다는 약속인 셈이다.


  식량안보만큼 중요한 일도 없기에 전용(轉用)을 엄격하게 금지한 규제를 풀어서라도 농지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많이 깔자는 주장의 배경에 ‘탄소중립’이라는 다급한 목표가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생산을 시급히 늘려야 화력발전소나 공장 등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 편하게 해법을 찾으려는 게 아닐까? 사람 사는 이치가 대개 그러하듯, 손쉽게 먹으면 나중에 탈이 나게 마련이다. 우량 농지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자는 주장에 ‘바로 그거야!’라며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 해명되지 않은 물음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첫째, 농경지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을 고려했는가? 태양광 발전을 확대하려는 이유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데 있음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세상이다. 태양광 발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당연히 찬성하고 지지한다. 그런데 왜 하필 농지란 말인가? 농업진흥구역으로 묶인 논의 가격이 낮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시라. 가을 들판을 뒤덮은 막대한 양의 볏짚, 그것이야말로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둔 ‘육신(肉身)’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오랫동안 적자가 누적되어 문제가 심각한 분식집이 있다고 치자. 메뉴가 몇 개 있는데, 그중에서 ‘벼농사’라는 메뉴는 정확히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근근이 흑자이거나 약간 적자다. 이 분식집에서 적자의 주된 원인은 ‘화력발전’이라는 메뉴다. 그래서 ‘화력발전’이라는 음식은 장차 메뉴판에서 삭제하고 ‘태양광 발전’이라는 요즘 잘 나간다는 신상품을 출시하려고 한단다. 그런데 왜 ‘벼농사’ 메뉴를 줄이려 하는가? 어쩌면 그동안의 적자를 조금이라도 메꾸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둘째, 간척 등 새로운 농지 개발은 사실상 어렵고 신도시 개발 등으로 전용되는 농지가 많아 장래의 식량안보나 농민의 생업 기반에 큰 위협이라는 여론이 들끓는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했음에도, 결국은 태양광 발전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논거나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가? 한때 유행하던 숙의(熟議) 민주주의 절차는 어디에 숨겨 두었나?

 

  셋째, 농지를 소유한 농민, 특히 고령 소농에게 태양광 발전은 작은 땅에서 농사짓는 것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을 기회가 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므로 농사짓지 말고 태양광 발전 시설을 놓는 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돈도 버는 일석이조라는, 이른바 ‘햇빛농사론’이다. 그 논리가 과연 타당한가?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할 비용을 정책 금융으로 저리 융자해주고, 생산한 전기를 한국전력이 어쨌든 구매해 준다는 보장이 있어서 그나마 7년에서 10년 사이에 비용을 회수하고 본전을 뽑는다는 것 아닌가?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포집할 수 있는 방식으로 농사를 바꾸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이른바 ‘저탄소 농업’을 확산한다면, 식량안보 걱정도 덜고 이산화탄소 흡수량도 늘리고 농가 소득도 늘리는 일석삼조(一石三鳥) 아닌가? 아니면, 최근 여러 해 동안 도시를 개발한다면서 전용한 농지와 앞으로 그렇게 전용될 농지 위에 짓는 건물 지붕과 주차장 따위에는 무조건 태양광 발전 설비를 덮도록 의무화하면 어떠한가?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겠는가?

 

  저탄소 농업과 태양광 발전이라는 주제는 심각하게, 진지하게 따져야 할 사안이다. 내가 듣기로는(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한국의 논벼 농사가 1년에 얼마나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볏짚으로 포집-고체화하는지를 따져본 연구도 없다고 한다. 그처럼 기초 자료도 없는 실태가 한심하다 못해 슬프다. 더욱 가관인 것은, 기초 자료도 없어 합리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어려운 판에 전현직(前現職)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농지에 태양광 들여놓기’를 너무 쉽게, 너무 몰상식하게 떠들며 분위기를 띄운다는 사실이다.

 

  이상과 같이, 이른바 ‘기후위기’ 담론의 흥행 분위기에 얹혀서 성급하게 그리고 단편적으로 제시되는 정책 제안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농지에 태양광 발전 확대 정책’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은 에너지 전환 문제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환경’ 문제와 농업‧농촌의 현실을 연결지어 생각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그리고 몇 가지의 개별 정책사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환경농업 정책이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에서 공식화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쓰는 용어, 농업-환경정책(agri-envrionmental scheme)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이라는 정책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문헌에서 ‘농촌환경정책’이라는 표현은 등장한 적이 없다. ‘농촌 어메니티(rural amenities)’, ‘농촌다움’, ‘금수강촌가꾸기’, ‘맑은물 푸른 농촌 가꾸기’ 등등의 언표(言表)가 한때 유행하기도 했지만, 여러 문제를 포괄하면서 다양한 정책 수단을 체계적으로 배치한 ‘농촌환경정책’이라는 범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농촌의 환경이 아직까지는 괜찮은 편이니까 문제없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정말 괜찮을까? 농경지에 곁붙은 소하천이나 마을을 통과하는 도랑-배수로를 한번 들여다보시라. 산골이 아닌 바에야, 대개는 서울시 청계천보다 더 흐릿하고 악취가 난다. 시골 개울물이 맑지 않다는 감상을 근거로 ‘농촌환경정책’이라는 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다.

 

  국토 환경의 보전과 관리라는 관점에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사안이 ‘물순환’이다. 물은 바다 표면에서 증발해 구름이 되어 이동했다가 비가 되어 땅에 쏟아진다. 이것은 다시 댐, 저수지, 논, 가정, 공장, 상점 등등 온갖 경로를 거쳐 하천에 흘러 들어가 지표수가 되거나, 땅에 스며들어 지하수가 된 다음 다시 바다로 흘러간다. 이런 물순환 과정에서 농촌 지역의 논, 저수지, 하천, 관개 배수로에서 얼마나 많은 물이 저장되고, 흐르고, 증발하고, 땅속으로 스며들지를 상상해 보시라. 그렇게 농촌환경 전체가 물순환 체계와 직결되어 있다.

 

  석유나 석탄으로 대표되는 화석연료와 연관시켜도 할 이야기가 많다. 지금 우리는 ‘비닐하우스 원예 기술’이 널리 퍼진 덕택에 한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다. 노동력을 뒷받침할 형편이 되는 농업인은 농한기 없이 그리고 비 오는 날에도 관계없이 일하면서 토지 이용률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라도 없었다면 현금 만지기가 곤란했을 농가가 적지 않으리라.

 

  비닐하우스 시설원예의 공적(功績)이 적지 않지만, 그 후과(後果)도 만만치 않다. 우선, 영농폐비닐이 눈에 들어온다. 대략 해마다 약 32만 톤의 영농폐비닐이 나온다. 그 37퍼센트에 달하는 12만 톤이 수거·재활용되지 않고 방치되거나 불법으로 소각된다. 방치된 폐비닐은 농지에 묻혀 토양오염을 부채질한다. 폐비닐을 소각하면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등 2차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영농폐비닐의 문제 상황은 지난 15년 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농촌 인구는 고령화되어 영농폐비닐을 수거하고 운반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데, 그 발생량이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같은 기간 동안 수거량도 약 18만~20만 톤 범위에서 오락가락할 뿐, 늘지 않았다. 농업용 비닐에는 몇 가지가 있지만, 종류를 막론하고 에틸렌이 주원료다. 에틸렌은 원유 또는 천연가스 원료에서 주로 생성되는 석유화학 제품이다. 즉, 농업용 비닐을 사용하는 그만큼 화석연료를 쓰는 것이고 지구온난화에 기여하는 셈이다. 에너지 측면에서도 농업용 비닐은 점수를 깎아먹는다.

 

  풍력, 태양광, 소수력 등 화석연료가 아닌 신재생 에너지 생산 기반을 확충하는 과제가 아주 중요한 건 분명하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 생산 기반 확충과 병행해야 할 실천은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투입을 줄이는 일이다. 농촌에 한정해서 본다면,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를 덜 쓰는 방향으로 농업생산 방식을 바꾸는 것만큼 큰 일이 없을 테다.

 

  과문(寡聞)한 탓이겠지만, 한국에서 농업생산에 기본이 되는 태양에너지 외에 직간접적으로 투입되는 인위적인 에너지의 총량을 추정한 수치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동안 농업생산에서 인위적인 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져 왔다는 사실은 금세 알 수 있다. 인위적 에너지는, 그 형태가 전력(電力)이든 경유든 농약이나 화학비료 같은 합성물질 투입재든 대부분 화석연료로부터 나온다.

 

  농업은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생산활동이라고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점점 덜 ‘자연적’인 활동으로 변한 것 아닐까? 농업은 과거에 자연(태양) 에너지를 벌어들이는 활동이었는데, 이제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활동이 된 셈이다. 생산량 총량을 극대화하려 투입을 계속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영농이 바뀐 데 원인이 있다. 이 영농방식을 바꾸는 일이야말로 농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근본적인 처방일 테다. 물론,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고투입이라는 한마디로 표상되는 이 영농방식을 바꾸려면 노동력이 더 있어야 한다. 석유화학 기반 투입재를 노동으로 대신할 일이 많겠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거나 직불금 같은 직접적인 소득지원이 대폭 확충된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웬만한 이들은 다 알듯이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어쨌든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영농방식을 바꾸도록 촉진하는 것은 농업정책의 영역이지만 그 정책이 농촌의 환경에 깊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양돈이 활발한 어느 농촌의 주민들에게 ‘환경’이라는 말을 던지면 축산분뇨에서 나오는 악취 문제가 가장 먼저 떠오를 테다. 도시 아이들이 ‘고향의 냄새’ 때문에 시골의 할머니 뵈러 가기 싫다고 말하는 바로 그 냄새다. 악취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농약 못지않게 수질오염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축산분뇨다.

 

  양축 농가에서 가축분뇨를 몰래 방류하는 것만이 악취와 수질오염의 원인이라면, 엄격히 단속하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테다. 오염의 원인이 가축분뇨 불법 투기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가축분뇨로 만든 유기질 퇴비를 농경지에 투입하는 이들은 양축 농가가 아니라 경종 농가다. 유기질 퇴비는 원래 토양의 물리적·생물학적 성질을 개선하는 효과 측면에서 화학비료보다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그래서 화학비료 대신 사용하라고 정부가 권장해왔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지 않던가. 유기질 퇴비도 지나치게 많이 쓰면, 작물이 흡수하지 못하고 남은 질소 및 인 성분이 물을 부영양화(富營養化)시킨다. 영양물질이 많으니 플랑크톤이 비정상적으로 번식한다. 그런 물을 두고 사람들은 ‘썩었다’ 또는 ‘녹조라떼’라고 말한다.

 

  농약을 쓰지 말자거나, 유기질 퇴비 사용량을 줄이자거나, 완효성 비료를 사용하자거나 등 여러 실천들이 제안되지만, 농민 각자가 나름대로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성싶지 않다. 특정한 수계(水系)를 공유하는 농경지의 농민들이 함께 의논하고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종류의 집합적 활동(collective action)은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거나 축산 부문에서 상당 부분 기원하는 악취나 수질오염을 줄이는 데에 신통방통한 단 한 가지 비법이 있을 리 없다.

 

  그밖에도 농촌 환경과 관련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전국 농촌에 최소 6만 채 이상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빈집의 문제가 있다. 철거하거나 새로 꾸며서 어떤 식으로든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된다. 농경지 한복판에 오염원으로 의심되는 공장들이 난립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브라운필드(brown field)가 농촌에도 적지 않다. 폐광,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에 걸린 동물을 살처분하여 묻은 매몰지, 문 닫은 산업단지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생태학적으로 또는 역사문화적으로 민감하거나 소중한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어 보전해야 할 것들은 농촌에 얼마나 많은가?

 

  농촌 환경과 관련하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개입이 아예 없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다. 미흡하나마 여러 가지의 조치들이 이미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제각기 단편적으로 진행되는 정책이나 규제를 한데 묶어 상호 연관성을 고려한 접근방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농업환경에 관해서는 농사짓는 방식이 바뀌어야 하고, 농촌이라는 장소를 환경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는 주민들이 상당히 많은 노동을 투입해야 한다.

 

  규제든, 신기술 도입이든, 인센티브 제공이든 무엇보다 다수의 농민-주민들이 일정한 공감대와 협력에 바탕을 두고 공동으로 혹은 조직적으로 무언가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대부분이다. 결국 필연적으로 농촌의 일정한 장소에 대한 중장기적인 계획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농지를 비롯한 토지의 용도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 모든 일은 개별 정책사업으로 달성할 수 없는 일이다. 아주 많은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다. ‘농촌환경정책’이라는 새로운 정책 범주를 확립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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