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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으면 연구를 안 해야 해. 아니면 사기를 칠 줄 알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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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오늘

돈이 없으면 연구를 안 해야 해. 아니면 사기를 칠 줄 알든가

꽃을 든 발명가 현경면 박재순

 

 

[크기변환]동행_인물.JPG
박재순씨가 작업을 한창 진행중이다

 

 

  무안주민의 일상을 취재하는 동행. “순박하게 농사나 짓고 사는 시골 사람들”이란 말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도시가 아닌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은 이토록 단순하게 정의 내려지곤 한다. 그러나 한 개인의 삶은 한마디로 특정되는 것이 아니다. 특정 개인의 삶 전체를 전형적인 카테고리 안으로 넣으려 드는 것은 무지이고 오만이며 거짓이다.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업을 가지고 살더라도 모두가 자신만의 고유한 역사를 지닌다. 시골에도 사람이 있고 삶이 있다. 무안타임스는 무안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의 하루를 동행하기로 했다. 첫 번째 동행 손님은 현경면에서 화훼농가를 하는 박재순씨다. 그가 무안에서 아내와 함께 화훼농가를 시작한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하우스 천장이 찢어질 것처럼 엄청난 소음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던 날, 박재순 씨는 어김없이 꽃을 수확하고 있었다. 여느 중년들처럼 편안한 아웃도어 차림을 한 그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장인 비닐하우스 안에는 꽃들이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빼곡했다. 옆에는 그가 직접 발명했다는 꽃을 담는 전용 수레가 꼭 붙어 있었다. 화훼농가를 하는 사람들의 고질병이 어깨와 팔 통증이라고 했다. 매일 서서 꽃을 따다 보니 여기저기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고. 그런데 이 수레가 있으면 몸에 무리도 덜 들고 작업이 훨씬 수월하다고 했다. 

  목포에서 고등학교 3년, 그리고 성인이 되어 1년 정도 객지에서 생활한 것을 빼고는 무안에 쭉 살았다는 그는 서른 살부터 꽃을 기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꽃 농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일을 하기 전까지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고.


  “내가 기계에 소질이 있어서, 트랙터 가지고 일을 했제. 지금은 농기계가 농가마다 있는데 그때는 현경면에 트랙터가 별로 없어서 트랙터 일을 한 거야. 근데 일반적인 농사를 짓는 게 안 맞드라고. 논농사라는 게 태풍이 오고 이러면 힘들어. 소득도 적고.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자 하우스에서 수박 농사 알타리 농사 몇 년 했지. 그때 당시는 그것이 소득도 괜찮았거든. 그러다가 더 좋은 일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꽃 농사를 시작했죠.”


  무안에서 나고 자라 결혼까지 한 그는 슬하에 세 자식을 거뒀다. 스물아홉에 장가들었는데, 지금이야 이른 나이지만 그 당시에는 늦게 한 축에 속한 편이란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학교 가는 길에 꽃을 챙겨주는 다정한 아빠이기도 했다. 첫째는 꽃을 가져가는 게 창피하다며 투정을 부린 적도 많았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꽃을 일상과 함께하는 것이 아닌 특별한 일에만 주고받는 것으로 여기는 문화인 탓도 크다. 요즈음에 들어서는 분위기가 바뀌어 가고 있지만, 예전에는 꽃을 일상에서 주고받는 게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동네 마트에서도 손쉽게 꽃을 구매할 수 있고, 꽃으로 집안을 장식하는 것이 보편화된 유럽 같은 나라와는 다르게 한국은 내 공간을 꽃으로 꾸미는 일이 사치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우리나라 화훼농가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


  “10년 전에는 다른 농업보다 꽃이 소득이 괜찮았는데. 지금은 갈수록 꽃 소비도 줄고, 우리나라 꽃 문화는 가정집에서 쓰는 게 아니라 대부분 행사용으로 쓰는 문화여. 행사하고 나면 쓰레기 치울라니까 그걸로 또 문제가 되어서 생화를 안 쓰네 마네 하면서 소비량이 줄고, 수입 꽃도 엄청 늘어났제. 옛날에는 꽃을 수입하는 절차가 복잡했는데, 요즘은 전화 한 통만 하면 해외에서 꽃이 날라 올 정도라니까. 동남아나 베트남 쪽에서 포장에서 날라와 버린다고. 가격도 그쪽이 더 저렴하고...” 

 

 

동행_손.jpg

 

 

  15년 전만 해도 리아트리스, 백합, 알륨 등 여러 가지 종류의 꽃을 길렀다고 했다. 그런데 수입 꽃이 다양하게 들어오면서 국내 꽃들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졌다. 도태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전 세계에서 값싸게 밀려오는 꽃들과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국 농사도 지었지만, 그마저도 중국에 시장을 모조리 빼앗기고 코로나로 인해 형식적으로나마 트여있던 수출길도 완전히 막혀버린 실정이다. 현재는 농사를 짓는 꽃의 종류가 소국과 알스트로메리아 두 가지로 줄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이와도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바로 얼굴을 보고 대화가 가능한 세상이다. 이런 현실에서 세계화의 흐름을 어찌 피해갈 수 있으랴. 그러나 어려운 실정 속에서도 박재순씨는 매일매일 열심히 꽃을 피워내고 있다. 

  그에게 손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었다. 쑥스럽다는 듯 웃은 그는 두 손을 펼쳐서 기자 앞에 내보였다. 농사꾼의 손이 고울 리가 없다. 그간의 노동이 고스란히 녹아든 거칠고 투박한 손이지만, 이 두 손에서 아름다움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꽃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광고 지면에 나오는 흠집 하나 없이 보정된 매끄러운 가짜 손이 아니다. ‘진짜 삶’이 생생하게 담긴 아름다운 손이었다. 

  그의 손에서 자라는 것은 꽃뿐만이 아니다. 그는 20년이 넘게 신기술 발전기를 만들고 있는 발명가이기도 하다. 게다가 구독자가 천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에는 박재순씨가 직접 발명한 발전기의 영상들이 올라와 있다. 조회수도 상당하다. 3년 전에 올린 발전기 관련 영상은 조회수가 무려 8만 9천회다. 영상에 관심을 보이는 댓글들의 수도 100개가 넘는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한 번도 학원이나 학교 같은 정식 기관을 통해 기계 공학을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기계를 개발한 것은 20년이 넘었거든요. 호기심 삼아서 발전기를 만들어봤는데 전기가 나오더라고. 어. 이거 괜찮다? 했지. 특허를 내기 전에는 유튜브에 못 올리니까, 특허가 나올 시점에 유튜브를 시작했죠. 전화번호도 올리니까 전국에서도 많이 찾아오죠. 구독자도 천명 정도가 되고.” 


 기계를 발명하고, 특허를 받기까지도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특허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발전기를 보면 엔진 큰 것을 돌리려고 힘을 많이 써야 한다. 그런데 저걸 힘을 안들이고 하는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별 시도를 다 해봤죠. 자석 성질인 N극과 S극을 바꾸면, 아주 노벨상 저리 가라 세계를 뒤집을 수 있는 건데. 도저히 자석 성질은 바꿀 수가 없더라고. 근데 전자석으로는 N극과 S극을 바꿀 수 있어요. 내 발명품은 거기에서 착안을 했지. 영국에서도 어떤 학자가 이것을 했더라고. 근데 그것은 원터치 형이여. 내 것처럼 회전하는 방식은 생각하지 않고, 터치형으로만 논문이 나와 있어. 세계 특허를 낼 때는 그 기관에서 반박이 와요. (네가 특허를 받으려는 것과 동일한) 이런 기계나 이런 이론이 있다고. 그러면 거기서 내가 다시 반박을 해야 하지. 나는 기존에 있는 원터치형이 아니고, 연속으로 도는 형상인데, 블러쉬라는 것이 N극과 S극을 바꾸면서 계속 같이 돌아요. 블러쉬, 그러니까 흑연이라는 것은 힘이 안 들어가고 전기만 보내주면 끝이 나죠. 그런 과정들을 번역가를 통해 설명하고 반박하면서 특허를 받았죠.” 


  그의 발명품은 대학교수들과 기업체를 이끄는 사장들에게도 주목을 받았다. 그의 발전기를 보고 싶어서 찾아온 사람들도 꽤 된다고. 한국전력공사에서 설명회를 가진 적도 있다고 했다. 


  “한전 같은 곳에 브리핑하러 가면 어디에서 연구했냐, 배웠냐 다 물어봐. 그래서 안 배웠다고 하면 앞뒤가 안 맞는다고 얘기하지. 다들 그렇게 생각해. 근데 나만 이러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보면, 꼭 대학을 나오고 그쪽 전문직 안 해도 이쪽으로 트인 사람들이 많아요. 이론 자체는 교수님들도 보고, 중소기업 사장님들도 와서 봤지. 누군가가 이 이론 자체는 풀어야 한다고 얘기들 하지. 이 이론 자체가 새로운 이론이니까. ” 


  그의 발명품인 발전기가 완성된 상태이냐고 묻자 그는 발전기는 완성됐지만, 성능의 한계점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열쇠라고 했다. 


  “완성품은 되어있는데,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죠. 성능의 한계점이 올려야 하고. 지금이 70퍼센트라고 치면 100퍼센트까지 올려야 하죠. 밸런스를 맞춰야 하고. 지금은 100을 준다고 하면 30밖에 성능이 안 나와요. 중간 부속들이 성능을 발휘하게 구성하는 걸 계속 연구해야지.”


  전화기도 발명 초기에는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았지만, 현대에 들어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우수해졌듯 자신의 발전기도 성능을 끌어 올리기 위해 갈 길이 남았다고 했다. 

  이 기술이 상용되면 노벨상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자 박재순씨는 위대한 상 같은 것을 떠나서 자신이 만든 이론이 더 발전해서 전 세계에 두루두루 쓰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개인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발명’을 하고 싶다는 그의 진심이 돋보이는 대답이었다. 


  “내가 언론플레이도 좀 할 줄 알고, 말도 부풀릴 줄 알면 언론에도 나갔을 텐데. ‘세상의 이런 일이’에서도 연락이 왔었어요. 그런데 자기들도 내 이론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한달 내내 전화가 오더라고. 내가 거짓말도 좀 칠 줄 알고 그랬으면 서울 쪽에서 취재도 하러 오고 했겠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했어. 지금 이러이러한 단계에 있다고. 근데 본인들도 내 발전기에서 전기가 나올 수 없다면서 이해를 못하는데, 나는 와서 봐야 한다고 했지. 내 기계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다 기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거나 중소기업이거나 하는데, 그 사람들도 내 기계로 실험하고 나면 전기가 나온다는 걸 다 알아.” 


  꽃도 기르고 발명도 하느라 바쁠텐데 어떤 점이 제일 어렵냐고 물었다. 그는 그 질문에 “뭐든 돈이 있어야 한다”라는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돈이 있어야 하지.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생각했는데. 돈이 정말 많이 들어요. 돈이 없으면 연구를 안 해야 해. 아니면 사기를 칠 줄 알든가. 부품을 구하는 것도 돈이 많이 들어요. 핸드폰이 한 대에 백만원이라고 하면은, 개인이 이것을 만들려치면 천만원이나 억을 들여도 못 만들어요. 부속품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예를 들면 1암페아짜리 부품은 상용화 되어있어서 구하기가 쉬워도, 25암페아짜리는 구하려면 하나에 몇백만원이 들어요. 부품이 필요해서 전화를 하면 무슨 회사냐, 무슨 연구소냐부터 묻지. 기업이면 나중에 그 업체와 계약을 해서 납품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무료로 제공을 받아도, 개인인 나는 다 돈을 주고 구해야 돼. 그리고 기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있어. 새로운 이론 가지고 장난쳐서 투자받는 사람들. 다른 지역에서도 나를 불러서 갔는데, 투자자들 모아놓고 장난치는 거 보고 그냥 나와버렸지...” 


  마음 놓고 발명하기 어려운 현실을 “사기를 칠 줄 알든가”라는 농담으로 축약한 그지만, 기계를 가지고 투자자들을 현혹하는 행사에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버린다는 그는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발명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낸 발명품은 기존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법칙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 그래서 다들 의문을 가진다고 했다. 그가 올린 발전기 설명 영상의 댓글 창에도 그의 발명품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그가 발명한 기술을 응원하는 내용도 있지만, 이게 말이 되냐며 비난하는 댓글도 더러 있다. 그때마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와서 보세요.” 그 한마디에서 그가 열심히 일궈낸 꽃밭처럼, 발명품에 대한 자신감도 느낄 수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박재순씨는 기자의 품에 미리 수확해놓은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발명가 선생님의 감동적인 선물이다. 비닐하우스나 시골집들이 늘어선 마을에 강아지 두 마리가 왕왕 짖으며 가는 길을 배웅해주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세계 특허까지 받은 발명품이, 한 농사꾼의 손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그러나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박재순씨는 오랜 세월 동안 묵묵하게 해오고 있다.

  그가 직접 길러낸 꽃의 이름은 알스트로메리아라고 했다. 알스트로메리아의 꽃말은 ‘새로운 시작과 배려’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그의 발명품이 그가 길러낸 꽃들처럼 자양분을 받고 쑥쑥 자라서 그의 소망대로 이 세상에 많은 도움이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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