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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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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

성장의 한계

사설


 봄이 왔다. 노랫말처럼 삼천리 금수강산에 새봄이 와부렀다. 봄만 온 게 아니다. 근심걱정도 함께다. 무슨 말인가? 노랫가락과 달리 삶이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사이에 체감하는 경제온도는 판데믹을 몰고 온 COVID-19, 즉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여파에 사뭇 썰렁하다. 민심은 천천히, 그러나 여태까지와 다른 흐름으로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민심이 향하는 길이 흉흉할지 넉넉할지는 아직 모른다. 입버릇 삼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읊조려야 할까?


 ‘인류의 위기에 관한 프로젝트’ 보고서가 바탕이 되어 지난 1972년 단행본으로 나온 책 <성장의 한계>는 인간과 생태계의 삶에 여전히 유효한 근거들을 탁월하게 제시한 연구서다. 20세기 무한성장의 궤도, 육해공을 뒤덮은 운송엔진의 가속도, 석유게임, 유전자변형생물(GMO)의 등장, 기초환경파괴 등이 경제논리의 가면을 쓰고 지구를 마음껏 갉아먹는 시대에 ‘한계’라 쓰인 옐로우카드는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우리에게 물어야 할 때다.


 언제부턴가 인류는 자연계의 일부가 아닌 독보적 존재로 일컬어졌다. 인간은 동식물과 다른 존재로, 자연은 대상으로. 사실 생명에 관한 인식과 논의는 지지부진한 적이 없다. 지식인류가 끊임없이 고뇌하고 권력에 저항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설파해왔다. 그러나 이 세계의 근현대는 전쟁과 대량살상의 전시관에 다름 아니다. 그 피범벅을 거치며 지배동물로서 금자탑을 쌓은 인류는 2020년 기준 78억명으로 불어났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가?


식량문제를 바라보는 몇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인구증가로 인한 식량난, 둘째 기후변화에 의한 생물종의 도태, 셋째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이로 인해 파생하는 문제는 첫째 빈곤의 악순환, 둘째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증가에 따른 환경폐해, 셋째 총체적인 붕괴의 징조 등이다. 물론 COVID-19와 같은 감염증 확산은 징조의 말초적 현상이다. 위기는 변화를 수반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도 많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어떠한가.


호남은 조상 대대로 농어업지역이었다. 알다시피 삼남(三南)의 일부인데, 그중에서도 호남은 신라왕조에 복속당한 이래 줄곧 지배정권의 차별을 감수하며 식량생산지 기능을 맡아왔다. 세곡(稅穀)과 각종 진상품이 경주와 개성, 한양으로 향했다. 조정은 진상품을 뽑아 차이나(CHINA)에 공물을 보냈다. 오늘날 ‘Made in CHINA’를 붙인 소비재가 한국사회를 뒤덮어버린 것도 지정학적 유감이다. 조선 후기의 학정(虐政)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호남은 아예 식량수탈기지로 참혹하게 살아야 했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함께 직면한 현실을 바라보자. 수탈의 사슬은 겨우 끊었지만 보이지 않는 먹이사슬이 삶을 지배하고 있다. 욕망과 이기심, 그리고 허영심이다. 무한성장의 신화가 뒤틀어버린 현실이다. 이제는 예전의 공동체를 운운하는 게 불가능한 꿈인지도 모른다. 오염된 대지와 강물 위에 다시 똥찌꺼기를 붓고 벌레를 물리쳐가며 빚 갚을 돈을 모아야 한다. 들판에서는 녹슨 농기구와 비닐 따위가 악취와 동거하고 있다. 저 들판에 자라난 싹은 봄의 전령인가 아닌가.


기억의 꽃이 흩날리는 이 봄에 ‘성장의 한계’를 다시 생각한다. 성장은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식량이 남아돌고 번듯한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남아돌고, 인터넷에서 대폭 할인된 옷을 구매할 수도 있다. 얼어죽거나 굶어죽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라. 무엇이 달라졌는지. 농촌은 노인들의 적막강산이 된 지 오래다. 정부의 복지정책이 가족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일부 대농과 축산농가, 양식업자를 빼면 소득수준이 높지도 않다. 그러나 삶의 양식은 많이도 변해버렸다. 농약과 비료 없이는, 자동차와 전자기기 없이는, 일회용품과 그리고......


웃음과 활력이 사라진 시골에는 개와 농기계 소리만 남았다. 노인들의 표정은 화석이 되고 우체부는 간간이 택배와 요금청구서를 놓고 간다. 읍내 골목에는 박스와 플라스틱이 굴러다닌다. 이 많은 재활용품과 음식쓰레기가, 건설폐기물이, 농어촌 폐기물이, 고장난 기계와 자동차들이 우리 삶의 흔적이다. 그저 사회적 비용만 치르고 잊어버리면 될까? 절제하거나 억제할 수는 없을까? 내가 살던 고향이 자랑스럽지 않다고 고향을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랑스러운 고향을 지키는 길은 무엇인가.


결국 ‘지속가능한 미래’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불확실하다. 그러는 사이, 환경재앙이 갈라진 생태계를 후벼판다. 바람과 햇볕이, 땅과 물이, 그 혜택을 받아온 뭇 생명들이 무한성장의 제물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고층빌딩의 첨단장치 속에서, 누군가는 시골집의 불편한 살림살이 속에서, 젊은이들은 이 낯선 세상에 적응해보기도 전에 더 큰 재앙을 맞이할지 모를 일이다. 자연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재앙은 이미 시작되었다. 정부에서 주는 보상금이 한 끼 밥값을 덜어줄지언정 이 세상의 민낯을 덮어주지는 못한다. 인식전환이 올바른 삶의 출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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