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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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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농민운동의 뿌리를 찾아가는 ‘고막포 전투 기념제’...변혁의 정신을 …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행사 통해 1894년의 뜻 기려 무안고등학교 역사동아리 학생들, 폐정개혁 12조 낭독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을 권리는 현재도 절실한 과제

무안농민운동의 뿌리를 찾아가는 ‘고막포 전투 기념제’...변혁의 정신을 되새기다

2019년부터 5월 11일 황토현 전승일이 국가기념일인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5년 만에야 이뤄진 일이었다. 사람을 하늘처럼 받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아래로부터의 혁명. 민초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변혁을 꾀한 전무후무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 4.19혁명, 5.18광주항쟁, 6.10민주화투쟁까지, 이 나라 변혁운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26일, 함평군 학교면 고막다리에서는 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유족회 주최로 ‘무안동학농민혁명 고막포 전투 기념제’가 열렸다. 기념제는 성균관대 배항섭 교수의 주제강연으로 시작하여 추모사와 분향 및 헌화, 고막포 전투 재연행사와 함께 동학농민혁명군의 넋을 기리는 진혼굿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사에는 배종열 무안동학농민혁명 유족회장, 박석면 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무안군청 부군수, 무안교육지원청 교육장 및 무안고등학교 학생들과 지역 주민 등 3백여명이 참여했다. 고막포 전투와 대접주 배상옥 고막포 전투는 광주, 나주, 무안, 함평 일대의 농민군이 총집결하여 북쪽과 서남쪽에서 나주성을 공략한 대규모 공방전 와중에 일어난 전투로 무안과 함평지역 농민들이 주도한 전투다. 이 전투의 중심에는 무안의 대접주 배상옥이 있다. 접주는 그지역의 동학도를 이끄는 최고 책임자를 뜻하는 말이다. 배상옥은 전봉준이나 손화중, 김개남과 같은 접주들과 같이 동학농민군의 주요 지도자였으나 그의 이름은 일제에 의해 철저히 지워졌다. 그런 연유로 다른 접주들과는 다르게 무안의 대접주 배상옥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삼향면 대월리에서 태어난 배상옥은 무안, 함평, 장흥, 해남, 강진, 영암지역의 동학교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전남지역 일대의 전투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당시 관군의 기록인 ‘순무선봉진등록’에는 “무안은 거괴가 많고 그중에서도 배상옥·배규찬 형제는 무안의 거괴로 남도 연해지역에서는 괴수자라고 칭하며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최경선 등에 뒤지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안 대접주 배상옥과 무안-함평 일대의 농민군은 11월 17일 무렵 나주 외곽 30여리 지점에 있는 고막포(당시 무안현 금동면)과 고막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동학농민군 세력과 대척점에 있던 수성군은 무안 일대의 농민군을 공격하기 위해 포군 3백명을 인솔하여 농민군이 고막포에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고막포 전투는 1894년 11월 18일 아침에 시작됐다. 수성군이 먼저 대포를 쏘고, 농민군 일부는 대포를 피해 산 아래로 내려가 사방에 불을 지르며 대응했다. 결론적으로는 농민군의 참패였다. 관군 측에서는 “포환이 향하는 곳마다 적들이 죽었다. 관군은 기세가 올라 한명이 1백명을 감당하지 않은 이가 없었고 시체가 들판에 널렸다”고 기록했다. 사람은 많았고 다리는 좁았다. 조수 때문에 물이 불어난 상황이라 수많은 농민군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 기념제에서 주제강연을 한 성균관대 배항섭 교수는 “나주성이 이 지역 농민군들을 진압하는 거점이었다. 그래서 수성군이라 불린 관군들을 무력화시키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북쪽으로 올라간 전봉준 부대는 우금치에서 전투를 하고, 이 지역에 있는 손화중, 최경선, 오권선, 배상옥 장군은 나주성을 공략하기 위해서 대대적으로 준비를 해서 공세를 취했다. 그때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 이 일대다. 고막교의 전투에서 농민군들이 많은 희생을 했다. 만약 고막교에서의 전투가 성공했더라면 관군에게 큰 타격을 줘서 전라도 일대의 농민군 활동이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의미가 있고 규모가 큰 전투였다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을 기억하는 하는 사람들 1894년, 풀을 베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사회를 고쳐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로 낫을 들었던 수많은 무안의 민초들은 고막교 다리에서 죽음으로 저항했다. 127년이 지난 지금, 대접주 배상옥과 그 민초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함평이 된 고막포에는 고막교 돌다리가 어떻게 지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는 안내판만 존재할 뿐 동학농민혁명군들이 이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치열하게 투쟁한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학혁명군의 후손들과, 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그러하다. 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10여 년간 학살된 동학혁명군들의 위령제를 지냈다. 박석면 이사장은 “고막포 전투는 정말 큰 전투인데도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무안 농민군들이 주축이었음에도 그곳이 지금은 행정구역상 무안이 아니다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서 이제까지는 무안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그렇지만 올해는 고막포 현장에서 직접 추모제도 지내고 넋을 위로하는 진혼굿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고막포 전투 기념제 행사에는 무안고등학교 학생들도 함께했다. 무안고등학교 역사동아리 가온누리 학생들은 전주화약 때 동학혁명군들이 강화의 조건으로 초토사에게 제시해 새로 설치된 집강소에서 추진된 폐정개혁 12조를 낭독했다. 그 당시 농민들의 복장을 한 학생들은 개혁안을 당당하게 읽어나갔다. 또 극단 ‘갯돌’과 함께 고막교 다리 위에서 당시 고막포 전투를 재현하기도 했다. 무안고 1학년 이승준 학생은 “역사동아리 활동의 연장선에서 동학농민혁명 재현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동학군으로 참여하게 됐는데, 재현행사 준비를 하며 동학농민군이 된 기분을 느꼈다. 동학농민혁명의 투쟁 정신을 계승하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동학농민혁명 127년 후 대한민국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검색 엔진 구글에 ‘동학농민혁명’이라고 검색하면 제일 먼저 뜨는 페이지는 위키백과에 올라와 있는 동학농민혁명 소개 문서다. 위키백과는 여러 국가에서 사용하는 웹사이트로, 인터넷을 통한 백과사전 구축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모든 이가 간소한 절차를 거치면 편집이 가능해 공신력을 인정하지는 않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이용하는 사이트이므로 전파력이 강하다. 한국 위키백과 웹사이트의 동학농민혁명 문서의 첫 시작은 다음과 같다. “문재인 좌파정부 들어 농민혁명, 동학혁명, 동학농민운동 또는 동학농민전쟁으로 불리우기 시작한 동학난은 1894년 동학 지도자들과 동학교도 및 농민들에 의해 일어난 백성의 무장봉기를 가리킨다.” 또 이어지는 문서에서는 “혁명은 계획적으로 모의되고 정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시행되고 성공한 것을 혁명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동학난은 혁명이라고 부르는 데 문제가 있다. 동학은 고종의 무능과 양반과 탐관의 학정에 시달린 농민들의 항거였지 계획된 혁명이 아니었다.”라고 동학농민혁명을 부정하고 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혁명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일이고, 사회변혁을 위해 기존의 체제를 전복시키는 일이다. 혁명은 사회가 비뚤어진 방향으로 걷잡을 수 없이 나아가고 있을 때, 이러한 사회를 스스로 고쳐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민중들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은 민초들이 모여 사회변혁을 꾀한 전무후무한 역사적 사건이다. 침략과 수탈에 맞서 아래로부터 시작한 혁명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기치 아래 동학 농민들은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며 피 흘려 싸웠다. 혁명의 정의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동학농민혁명을 부정하는 한국 위키백과 동학농민혁명 문서 작성자처럼 한국 사회에는 그때 조선을 병들게 한 관리들만큼이나 사회에 폐단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과도 같은 자들이다. 사회면에 날만큼 커다란 범죄를 저지르는 것만이 폐단은 아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전국 언론사들의 기사만큼이나 사회에 만연한 ‘갑질’,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고 혐오하면서도 낯 하나 바뀌지 않고 당당하게 소리를 지르는 많은 이들, 3백킬로그램이 넘는 컨테이너 날개에 노동자가 깔려 죽어도 침묵하던 기업. 지난 3개월 동안 5백74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었다. 한국에서는 연간 2천여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는다. 성 정체성 때문에 강제전역을 당한 변희수 하사는 지난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달 22일에는 공군 부사관이 숨진 채 발견됐다. A중사는 부대 내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했지만 군대 내에서 피해를 호소해도 돌아오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폐정 개혁 12조에는 이런 내용들이 있다. ▲횡포한 부호들을 엄징할 것 ▲불량한 유림과 양반들을 징벌할 것 ▲노비문서는 태워버릴 것 ▲칠반천인(七班賤人)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 머리에 씌우는 평양립(平壤笠)을 벗게 할 것 ▲청춘과부의 재혼을 허락할 것 각기 다른 항목이지만 이 조항들이 뜻하는 바는 같다. 사람은 곧 하늘, 그러니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군이 피 흘려 싸운 지 127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소외와 차별 속에서 고통받고 죽는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지금까지도 유효하며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저작권자 © 무안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안양파 가격 폭락...농민들 시름이 깊다

“조생종 양파 격리는 임시방편일 뿐” 시장에 영향 못미칠 듯 타지역 하우스양파 재배 늘어 가격하락...인건비 문제도 심각

무안양파 가격 폭락...농민들 시름이 깊다

국내 양파 생산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무안군. 최근 불안정한 양파 가격과 인력난으로 농민들 걱정거리가 늘고 있다. 해마다 안정화되지 않는 양파 가격, 신규 경쟁자(다른 지역 양파 생산) 출현, 이상 기후로 인해 앞당겨진 양파 수확일, 코로나로 인한 농가 일손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양파는 매년 정해진 가격이 없다. 수확량이 많으면 가격이 낮아지고, 수확량이 적으면 가격은 오른다. 농민들은 ‘손익점’은 고사하고 매년 손해만 보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올해 하우스 양파 출하까지 양파 가격은 킬로그램 당 천5백원을 기록하며 꽤 괜찮은 가격을 받았다. 그러나 3월 15일 이후 제주도, 고흥에서 조생종 양파 출하가 시작되면서, 4월 양파 가격은 킬로그램 당 8백원, 5월에 접어들어 5백50원, 그야말로 폭락을 거듭했다. 이에 농협은 폭락한 양파 가격 안정화를 위해 일부 조생종 양파를 격리해 가격 안정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무안농협은 5월 8일부터 25일까지 양파 수매를 시작해 약 50일간 조생종 양파를 격리시켜 6월 26일 이후 출하시킬 예정이다. 떨어진 양파 물량을 일시적으로 조절해 양파 가격을 인상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생종 양파 격리를 일각에서는 임시방편일 뿐이라 지적한다. 조생종 양파는 만생종과 달리 저장성이 높지 않고, 양파를 격리해 출하일을 지연시킨다 해도 시장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무안농협은 이번 양파 가격 하락에 대해 양파 생산량과 심리적 요인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거래되는 양파 가격은 이달 10일 킬로그램 당 5백50원, 14일 4백50원에 거래되었다. 김경무 상무는 양파 물량과 관계없이 양파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며 “가락시장에 들어간 양파 트럭은 10일 79대, 14일 42대다. 물량 대비 가격은 오히려 하락 중이다. 저렴한 물품을 잘 구매하지 않는 소비자 심리가 작용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고 전했다. 김 상무는 경상도에서 재배 중인 양파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전라도에서 수확되는 양파는 가락시장을 제외하면 경상도에 판매가 되는데, 최근 경상도 지역에서 하우스 양파가 재배되면서 양파 가격이 하락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 국내 출입이 제한되면서 농가 일손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무안군에서 집계한 자료를 보면 무안에 잔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총 188명, 내국인 일용직 93명으로 농가당 평균 3~5명 꼴이다. 수확기를 맞은 이때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이마저도 기존에 외국인 노동자를 잔류시키고 있는 농가에 한하며, 신규 외국인 노동자 지원을 받기 희망하는 농가는 인력 증원이 불분명한 상황이다. 외국인 노동자 인건비도 천정부지로 오르는 중이다. 현재 무안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인건비는 여자 11만원, 남자 13만원이다. 지난해에 비해 1만원 정도 오른 가격이며, 2019년도에 비해서는 2만원 오른 것이다. 이런 인건비 상승 문제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수요공급 문제도 있겠지만,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인건비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 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외국인 노동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공유 중이며, 지역별 인건비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인건비가 높은 곳이 있다면 ‘야반도주’를 감행하는 외국인들도 있다. 무안 A인력사무소 김모씨는 인건비 상승에 대해 외국인 노동자 문제만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타국까지 와서 돈 벌어 돌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온 그들에게 더 많이 주는 곳이 있다면 그쪽으로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런 인건비 상승에는 농민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며 “농민들이 적정한 인건비를 정하고 그 이상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해야 하는데, 당장 농사를 지어야 하니 답답함에 가격을 흥정하는 상황이 문제를 불거지게 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자원봉사 행렬도 예정되어 있다. 여름방학을 맞아 초당대와 광주여대, 송원대 등 대학생들의 농어촌봉사활동 지원이 그 사례다. 인력난으로 고민하는 농민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라지만, 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무안을 비롯해 국내 농업은 대부분 노령층인 70~80대가 담당하고 있다. 취재 당시에도 노인과 외국인 노동자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지금 농민들이 느끼고 있는 농업의 현황을 농민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취재 지역은 현경면, 운남면, 망운면, 해제면이다. 기자의 질문에 그분들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해제면 72세:농사가 잘되면 뭐한당가, 가격이 똥값인디. 맨날 해봐야 칼로 물 베기지 뭐, 아무쪼록 손해만 안났으면 좋겄구만. 운남면 80세 : 지금 양파 가격은 끝도 없이 하락이요 하락. 방금 농협에서 문자가 들어왔는디, 지금 나갈 조생종 양파 출하를 기다리랍니다. 농수산부에 건의를 하겠다는디, 해봐야 뭐 얼마나 오르겄소? 답답해 죽을 지경이요. 망운면 65세 : 양파 가격이 형편없어. 내가 농사를 시작한 지 30년이 넘어. 그런데 나라에서 지원이나 보상 같은 건 하나도 없어.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었을 때는 보험이 있어서 받고 나머지는 농민들이 가격 피해를 받아도 어떤 보조도 없어. 그리고 보험도 올해 받으면 다음에 같은 곳에서 받기가 어려워. 연작을 짓지 말라고 그러는 거 같은데 우리처럼 임대를 해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다른 농지를 구해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정말 힘들어. 농사가 풍년이면 가격이 내려 힘들고. 정말 대단한 정부여, 진짜 잘하잖아? 농산물 가격 조금 오르면 수입을 사정없이 해버리니까. 정말 잘 하는 거여 정부가. 망운면 73세:작년보다 인부들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10명 달라고 하면 3명 오고, 뭐 어쩌겄어. 우리는 사람이 작아도 받아야지, 없는 것보다 낫제. 앞으로 계속 인부가 부족하면 농사 못 해. 나도 나이가 들고 농사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겄어. 빨리 이 망할 놈의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겄어. 현경면 52세: 제주도와 고흥 쪽 물량이 나오고 나니 이쪽 물량이 같이 터지면서 워낙 양도 많고, 양파값이 완전 똥값이 돼버렸어. 3월까진 양파 가격이 그래도 괜찮았어. 그때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조생종이 비싸게 거래가 되었는데 지금은 아니여. 그때 했던 농가들은 종자값 빼고 이득을 봤지. 보통 5톤 트럭으로 한 차를 보내면 마이너스 5백만원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거여. 농가는 어쩔 수 없이 출하를 해야 하고. 인건비가 제일 문제여 인건비가. 근디 지금 인건비가 올라도 외국인 노동자가 없어서 정말 미치겄어. 제발 외국인 좀 들어오게 해야지, 이러다 진짜 일을 못해서 농사가 안될 거 같은 상황이여. 오죽하면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내가 저쪽 태국에 가서 데리고 온다고 했다니까. 글고 지금 조생 끝나고 중생 이거 끝나면 만생이 나오는데 그것도 문제여. 5월 이후 또 나오기 시작하면 또 작살 나버릴 거여. 만생은 그래도 가격이 괜찮을 거여, 저장성이 좋아서. 어제 오늘 가락동 경매받은 게 제일 큰 양파가 15킬로그램이 9천6백원에 거래가 됐어. 그 말고는 4~5천원. 3월에 3만7천원까지 가던 양파값이 3분에 1쪽이 나버리니까 정말 힘들제. 운남면 82세:날씨도 글고 하늘에서 그런디 어쩔 것이여? 코로나도 글고 농산물은 싸고 인건비는 비싸고 작년, 올해 적자여. 지금 농사를 짓는데 들어가는 돈이 인건비, 종자대, 비료대 완전 죽 먹게 생겼어. 지금 나라 전체가 힘등께 사람들이 농산물을 사 먹는가? 그러니까 다 안 좋지 뭐.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 계속하는 거지 뭐 우리가 별수 있겄능가? 손해를 보더라도 계속 해야제. 대통령이 장사하는 자영업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우리 같은 농민들도 좀 신경 써서 잘 보살펴줬으면 좋겄어. 농민이 힘이 있고 그래야 대통령도 나라도 힘이 있제, 안 그런가? 망운면 69세: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면 다 서울 사람들 입맛에 맞출라고 하지, 정부에서 농민들 신경을 씁니까 어디? 대한민국 국민이 한 사람씩 5천원만 도와줘도 농민들은 부자 돼부러. 근디 그걸 정부에서 안 하지. 농산물 물가 잡는다고 수입해버리고, 이게 계속 반복되니까 농민들은 아주 죽어나는 거여. 올해 양파 가격이 비쌌거든? 근데 지금은 가격이 아주 아작이 나부렀어. 양파 20킬로그램 기준 2천원에서 3천원 남아. 본전도 안나와. 정확하게 따져본 건 아닌데 평당 7~8천원 남거든? 남의 땅에서 농사하는 사람들은 더 죽는 거여. 정부는 현장을 잘 몰라. 농사가 잘 된 사람을 기준으로 잡으니까 문제여. 땅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른 건데 정부는 그런 걸 몰라. 정부에 건의를 백날 해봤자 듣지도 않고, 뭐 그렇지. 운남면 73세:벼농사도 제대로 못하면 힘들고, 뭐든 혼자하면 힘이 들어요. 나이는 계속 들지. 땅이라도 조금 있으니까 벌어 먹을라고 하니 겁나 힘들어. 일손이 부족하니까 외국인 노동자 양반들 없으면 농촌은 못 해 먹어. 동네에서 몇 분씩 데리고 있으면서 일하는데 정말 일손이 부족해. 대통령이라고 뭔 수가 있나? 내 가족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게 현실인데 어떻게든 비집고 살아야지. 새벽 5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해서 오후 6시까지 해. 옛날에는 점심도 주고 참도 주고 했는데 요즘에는 아무것도 안 줘. 참말로 요즘에는 야박해. 농촌 인심이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는지 안타깝지 그냥. 외국인 노동자, 53세:코로나 때문에 집에도 못 가고 힘들어요. 원래 1년에 한 번씩 태국으로 돌아가서 부모님도 만나고 했었는데 지금은 너무 힘들어요. 아내하고 애기들이 너무 보고 싶어요. 빨리 코로나가 끝나서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그래요. 유통회사 대표, 60세 :서울 사람들 입맛에 계속 맞추다 보니까 피해는 농가만 보고 있어. 이보다 더 안 좋은 상황도 여러 해 있었어. 조생 가격이 무너지면 만생종 가격도 높을 수 없어. 정부에서 늦게나마 격리시킨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격리란 것은 폐기가 아니라 연기를 시키는 건데 이것도 문제가 많아. 올해 양파가 생산량이 많아 거기에 맞춰서 수입을 해야 하는데, 요즘은 다 수입을 민간 수입업자에 맡기니까 그 사람들은 한 망에 5백원이 남더라도 수익이 나면 많이 수입을 할 게 아니여. 이러면 다들 안 좋지. 지금 한창 시기적으로 양파 소비가 제일 많을 시기인데. 코로나 여파로 힘들어. 양 파 맛은 조생종이 제일 좋아. 만생은 우리가 뽑아서 건조를 시키는데 보관성이 좋제. 계속 양파 가격이 안정되지 않으면 만생 저장일을 늘리는 것밖에 할 수 없어. 야외활동이 줄고 식당 소비가 안되니까 농산물이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지. 정말 안타까워. 조생 중생은 소비가 없으면 다 상해, 바로바로 먹어야 해. 최소 여름까지는 보관이 가능하겠지만 오래 보관할 수 없어. 그러니 지금 상황이 정말 답답하지. 이보다 더 심한 시기도 있었어. 연례 반복되는데 대책이 없으니까 농사짓는 사람들은 갑갑하지. 땅 빌려서 하는 사람들은 더 답답하고. 운남면 67세:단가가 안 맞는데 어떤 농민이 기분 좋게 일을 합니까? 한해 농사가 농민들에게 전부인데 정부에서 대책이라고 말하는 게 출하일을 잠시 늦춰 가격을 올리겠다? 이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보일지 나는 모르겄소. 불행인지 다행인지 외국인 노동자들의 발길이 끊긴 지금 한국 사람이 종종 지원해 오는데, 나는 일손이 딸리는 판국에 좋긴 하지만 다들 말을 들어보면 사정이 딱한 사람들이 많아. 도시에 있던 사람들이 사업 실패하고 코로나 때문에 가게가 망해불고 해서 오는 사람들이 있어. 옆에서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파. 어제까지 사장으로 있던 사람들이 지금은 여기 와 있으니 하루 빨리 나라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오면 좋겄어. 현경면 75세:말로만 양파의 고장 어쩌고 저쩌고 군에서 맨날 홍보할 때 항상 양파를 강조해. 근데 실정은 이게 뭐냐는 거야. 품질 좋은 양파를 백날 생산하면 뭐해, 값도 제대로 못 받는데. 나중에 가면 농사 안 하겠다는 사람이 수두룩 할거여. 지금 당장을 보더라도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안 오니까 뭔 수가 있나? 앞으로 이런 전염병이 없을 거 같아? 나는 앞으로 더 자주 더 강한 게 올 거라 생각해. 그럼 그때마다 농민들은 계속 일손이 부족해서 이러고 있어야 해? 진짜 앞으로가 걱정이야. 나 같은 사람이야 나이도 들었고 이제 갈 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젊은이들은 살아갈 날이 만리가 넘게 남았는데 큰일이야 큰일. 저작권자 © 무안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농촌환경정책’의 새 방향을 정립해야 할 때다

농지에 태양광...손쉽게 먹으면 나중에 탈 나게 마련 방치된 영농폐비닐, 농지에 묻혀 토양오염 부채질 악취와 수질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축산분뇨 빈집과 농경지 한복판의 오염원 등 미해결과제 산적

‘농촌환경정책’의 새 방향을 정립해야 할 때다

지난해 12월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흡수량을 늘려서, 30년 뒤에는 한국에서 ‘이산화탄소 장부’상 수치가 0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흑자는 어려워도 최소한 본전치기는 되게 만들겠다는 약속인 셈이다. 식량안보만큼 중요한 일도 없기에 전용(轉用)을 엄격하게 금지한 규제를 풀어서라도 농지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많이 깔자는 주장의 배경에 ‘탄소중립’이라는 다급한 목표가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생산을 시급히 늘려야 화력발전소나 공장 등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 편하게 해법을 찾으려는 게 아닐까? 사람 사는 이치가 대개 그러하듯, 손쉽게 먹으면 나중에 탈이 나게 마련이다. 우량 농지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자는 주장에 ‘바로 그거야!’라며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 해명되지 않은 물음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첫째, 농경지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을 고려했는가? 태양광 발전을 확대하려는 이유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데 있음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세상이다. 태양광 발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당연히 찬성하고 지지한다. 그런데 왜 하필 농지란 말인가? 농업진흥구역으로 묶인 논의 가격이 낮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시라. 가을 들판을 뒤덮은 막대한 양의 볏짚, 그것이야말로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둔 ‘육신(肉身)’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오랫동안 적자가 누적되어 문제가 심각한 분식집이 있다고 치자. 메뉴가 몇 개 있는데, 그중에서 ‘벼농사’라는 메뉴는 정확히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근근이 흑자이거나 약간 적자다. 이 분식집에서 적자의 주된 원인은 ‘화력발전’이라는 메뉴다. 그래서 ‘화력발전’이라는 음식은 장차 메뉴판에서 삭제하고 ‘태양광 발전’이라는 요즘 잘 나간다는 신상품을 출시하려고 한단다. 그런데 왜 ‘벼농사’ 메뉴를 줄이려 하는가? 어쩌면 그동안의 적자를 조금이라도 메꾸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둘째, 간척 등 새로운 농지 개발은 사실상 어렵고 신도시 개발 등으로 전용되는 농지가 많아 장래의 식량안보나 농민의 생업 기반에 큰 위협이라는 여론이 들끓는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했음에도, 결국은 태양광 발전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논거나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가? 한때 유행하던 숙의(熟議) 민주주의 절차는 어디에 숨겨 두었나? 셋째, 농지를 소유한 농민, 특히 고령 소농에게 태양광 발전은 작은 땅에서 농사짓는 것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을 기회가 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므로 농사짓지 말고 태양광 발전 시설을 놓는 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돈도 버는 일석이조라는, 이른바 ‘햇빛농사론’이다. 그 논리가 과연 타당한가?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할 비용을 정책 금융으로 저리 융자해주고, 생산한 전기를 한국전력이 어쨌든 구매해 준다는 보장이 있어서 그나마 7년에서 10년 사이에 비용을 회수하고 본전을 뽑는다는 것 아닌가?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포집할 수 있는 방식으로 농사를 바꾸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이른바 ‘저탄소 농업’을 확산한다면, 식량안보 걱정도 덜고 이산화탄소 흡수량도 늘리고 농가 소득도 늘리는 일석삼조(一石三鳥) 아닌가? 아니면, 최근 여러 해 동안 도시를 개발한다면서 전용한 농지와 앞으로 그렇게 전용될 농지 위에 짓는 건물 지붕과 주차장 따위에는 무조건 태양광 발전 설비를 덮도록 의무화하면 어떠한가?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겠는가? 저탄소 농업과 태양광 발전이라는 주제는 심각하게, 진지하게 따져야 할 사안이다. 내가 듣기로는(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한국의 논벼 농사가 1년에 얼마나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볏짚으로 포집-고체화하는지를 따져본 연구도 없다고 한다. 그처럼 기초 자료도 없는 실태가 한심하다 못해 슬프다. 더욱 가관인 것은, 기초 자료도 없어 합리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어려운 판에 전현직(前現職)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농지에 태양광 들여놓기’를 너무 쉽게, 너무 몰상식하게 떠들며 분위기를 띄운다는 사실이다. 이상과 같이, 이른바 ‘기후위기’ 담론의 흥행 분위기에 얹혀서 성급하게 그리고 단편적으로 제시되는 정책 제안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농지에 태양광 발전 확대 정책’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은 에너지 전환 문제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환경’ 문제와 농업‧농촌의 현실을 연결지어 생각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그리고 몇 가지의 개별 정책사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환경농업 정책이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에서 공식화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쓰는 용어, 농업-환경정책(agri-envrionmental scheme)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이라는 정책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문헌에서 ‘농촌환경정책’이라는 표현은 등장한 적이 없다. ‘농촌 어메니티(rural amenities)’, ‘농촌다움’, ‘금수강촌가꾸기’, ‘맑은물 푸른 농촌 가꾸기’ 등등의 언표(言表)가 한때 유행하기도 했지만, 여러 문제를 포괄하면서 다양한 정책 수단을 체계적으로 배치한 ‘농촌환경정책’이라는 범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농촌의 환경이 아직까지는 괜찮은 편이니까 문제없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정말 괜찮을까? 농경지에 곁붙은 소하천이나 마을을 통과하는 도랑-배수로를 한번 들여다보시라. 산골이 아닌 바에야, 대개는 서울시 청계천보다 더 흐릿하고 악취가 난다. 시골 개울물이 맑지 않다는 감상을 근거로 ‘농촌환경정책’이라는 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다. 국토 환경의 보전과 관리라는 관점에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사안이 ‘물순환’이다. 물은 바다 표면에서 증발해 구름이 되어 이동했다가 비가 되어 땅에 쏟아진다. 이것은 다시 댐, 저수지, 논, 가정, 공장, 상점 등등 온갖 경로를 거쳐 하천에 흘러 들어가 지표수가 되거나, 땅에 스며들어 지하수가 된 다음 다시 바다로 흘러간다. 이런 물순환 과정에서 농촌 지역의 논, 저수지, 하천, 관개 배수로에서 얼마나 많은 물이 저장되고, 흐르고, 증발하고, 땅속으로 스며들지를 상상해 보시라. 그렇게 농촌환경 전체가 물순환 체계와 직결되어 있다. 석유나 석탄으로 대표되는 화석연료와 연관시켜도 할 이야기가 많다. 지금 우리는 ‘비닐하우스 원예 기술’이 널리 퍼진 덕택에 한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다. 노동력을 뒷받침할 형편이 되는 농업인은 농한기 없이 그리고 비 오는 날에도 관계없이 일하면서 토지 이용률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라도 없었다면 현금 만지기가 곤란했을 농가가 적지 않으리라. 비닐하우스 시설원예의 공적(功績)이 적지 않지만, 그 후과(後果)도 만만치 않다. 우선, 영농폐비닐이 눈에 들어온다. 대략 해마다 약 32만 톤의 영농폐비닐이 나온다. 그 37퍼센트에 달하는 12만 톤이 수거·재활용되지 않고 방치되거나 불법으로 소각된다. 방치된 폐비닐은 농지에 묻혀 토양오염을 부채질한다. 폐비닐을 소각하면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등 2차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영농폐비닐의 문제 상황은 지난 15년 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농촌 인구는 고령화되어 영농폐비닐을 수거하고 운반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데, 그 발생량이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같은 기간 동안 수거량도 약 18만~20만 톤 범위에서 오락가락할 뿐, 늘지 않았다. 농업용 비닐에는 몇 가지가 있지만, 종류를 막론하고 에틸렌이 주원료다. 에틸렌은 원유 또는 천연가스 원료에서 주로 생성되는 석유화학 제품이다. 즉, 농업용 비닐을 사용하는 그만큼 화석연료를 쓰는 것이고 지구온난화에 기여하는 셈이다. 에너지 측면에서도 농업용 비닐은 점수를 깎아먹는다. 풍력, 태양광, 소수력 등 화석연료가 아닌 신재생 에너지 생산 기반을 확충하는 과제가 아주 중요한 건 분명하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 생산 기반 확충과 병행해야 할 실천은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투입을 줄이는 일이다. 농촌에 한정해서 본다면,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를 덜 쓰는 방향으로 농업생산 방식을 바꾸는 것만큼 큰 일이 없을 테다. 과문(寡聞)한 탓이겠지만, 한국에서 농업생산에 기본이 되는 태양에너지 외에 직간접적으로 투입되는 인위적인 에너지의 총량을 추정한 수치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동안 농업생산에서 인위적인 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져 왔다는 사실은 금세 알 수 있다. 인위적 에너지는, 그 형태가 전력(電力)이든 경유든 농약이나 화학비료 같은 합성물질 투입재든 대부분 화석연료로부터 나온다. 농업은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생산활동이라고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점점 덜 ‘자연적’인 활동으로 변한 것 아닐까? 농업은 과거에 자연(태양) 에너지를 벌어들이는 활동이었는데, 이제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활동이 된 셈이다. 생산량 총량을 극대화하려 투입을 계속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영농이 바뀐 데 원인이 있다. 이 영농방식을 바꾸는 일이야말로 농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근본적인 처방일 테다. 물론,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고투입이라는 한마디로 표상되는 이 영농방식을 바꾸려면 노동력이 더 있어야 한다. 석유화학 기반 투입재를 노동으로 대신할 일이 많겠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거나 직불금 같은 직접적인 소득지원이 대폭 확충된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웬만한 이들은 다 알듯이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어쨌든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영농방식을 바꾸도록 촉진하는 것은 농업정책의 영역이지만 그 정책이 농촌의 환경에 깊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양돈이 활발한 어느 농촌의 주민들에게 ‘환경’이라는 말을 던지면 축산분뇨에서 나오는 악취 문제가 가장 먼저 떠오를 테다. 도시 아이들이 ‘고향의 냄새’ 때문에 시골의 할머니 뵈러 가기 싫다고 말하는 바로 그 냄새다. 악취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농약 못지않게 수질오염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축산분뇨다. 양축 농가에서 가축분뇨를 몰래 방류하는 것만이 악취와 수질오염의 원인이라면, 엄격히 단속하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테다. 오염의 원인이 가축분뇨 불법 투기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가축분뇨로 만든 유기질 퇴비를 농경지에 투입하는 이들은 양축 농가가 아니라 경종 농가다. 유기질 퇴비는 원래 토양의 물리적·생물학적 성질을 개선하는 효과 측면에서 화학비료보다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그래서 화학비료 대신 사용하라고 정부가 권장해왔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지 않던가. 유기질 퇴비도 지나치게 많이 쓰면, 작물이 흡수하지 못하고 남은 질소 및 인 성분이 물을 부영양화(富營養化)시킨다. 영양물질이 많으니 플랑크톤이 비정상적으로 번식한다. 그런 물을 두고 사람들은 ‘썩었다’ 또는 ‘녹조라떼’라고 말한다. 농약을 쓰지 말자거나, 유기질 퇴비 사용량을 줄이자거나, 완효성 비료를 사용하자거나 등 여러 실천들이 제안되지만, 농민 각자가 나름대로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성싶지 않다. 특정한 수계(水系)를 공유하는 농경지의 농민들이 함께 의논하고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종류의 집합적 활동(collective action)은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거나 축산 부문에서 상당 부분 기원하는 악취나 수질오염을 줄이는 데에 신통방통한 단 한 가지 비법이 있을 리 없다. 그밖에도 농촌 환경과 관련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전국 농촌에 최소 6만 채 이상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빈집의 문제가 있다. 철거하거나 새로 꾸며서 어떤 식으로든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된다. 농경지 한복판에 오염원으로 의심되는 공장들이 난립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브라운필드(brown field)가 농촌에도 적지 않다. 폐광,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에 걸린 동물을 살처분하여 묻은 매몰지, 문 닫은 산업단지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생태학적으로 또는 역사문화적으로 민감하거나 소중한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어 보전해야 할 것들은 농촌에 얼마나 많은가? 농촌 환경과 관련하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개입이 아예 없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다. 미흡하나마 여러 가지의 조치들이 이미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제각기 단편적으로 진행되는 정책이나 규제를 한데 묶어 상호 연관성을 고려한 접근방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농업환경에 관해서는 농사짓는 방식이 바뀌어야 하고, 농촌이라는 장소를 환경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는 주민들이 상당히 많은 노동을 투입해야 한다. 규제든, 신기술 도입이든, 인센티브 제공이든 무엇보다 다수의 농민-주민들이 일정한 공감대와 협력에 바탕을 두고 공동으로 혹은 조직적으로 무언가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대부분이다. 결국 필연적으로 농촌의 일정한 장소에 대한 중장기적인 계획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농지를 비롯한 토지의 용도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 모든 일은 개별 정책사업으로 달성할 수 없는 일이다. 아주 많은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다. ‘농촌환경정책’이라는 새로운 정책 범주를 확립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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