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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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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딱 좋은 것 같애요. 정붙이믄 사는 거잖아요.”

드론전문가 망운면 박우근

“여기가 딱 좋은 것 같애요. 정붙이믄 사는 거잖아요.”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온라인 활동을 즐겨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친숙한 단어다.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파고드는 일을 뜻하는 신조어)과 직업이 일치했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은 것은 모든 이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생계로까지 확장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망운면에 사는 박우근씨는 많은 이들이 원하는 소망을 실현해낸 삶을 살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날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는 그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이 되고 싶었다. 그의 직업이 파일럿인 것은 아니다. 그는 현재 드론을 이용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드론으로 방역과 방제를 하고 교육도 했으며, 또 드론을 판매하기도 한다. 박우근씨를 만나기 위해 망운면에 위치한 그의 개인 작업실에 찾아갔다. 커다란 창고에는 그가 직접 조립한 전동비행기들과 드론이 가득했다. 마치 영화에 나올법한 비밀기지 같은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날아다니는 것을 싹 다 좋아했죠. 원래는 조종사가 되고 싶었는데 공부가 안돼서, 손재주는 좀 있고.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 이 일을 했지. 손으로 꼼지락대는 걸 좋아해서 작업실에서도 이것저것 혼자 많이 만들죠.” 지금은 드론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박우근씨가 처음 일을 했을 때는 사람들에게 낯선 것이었다. 그는 드론 공장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했을 만큼 드론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너무 앞서가버려서 힘이 든 점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드론으로 농약 작업도 하고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타인들에게 드론으로 농약 작업을 하자고 하면 ‘그게 되냐?’라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드론이 여러 매체를 타면서 마치 돈을 쉽사리 만들어내는 마술도구처럼 홍보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죠. 드론으로 약을 한다고 해도,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다섯시까지 작업하는 곳으로 가고, 해 떨어질 때까지 꼬박 일해야 해요. 그렇게 해야만 돈을 벌죠. 한가하게 몇 시간 해서 버는 건 용돈벌이에요. 저도 보세요. 새까맣게 타부렀잖아요.” 박우근씨는 무안이 고향은 아니다. 광주에서 살던 그가 망운면에 터를 잡은 지는 2년 8개월 차라고 했다. 도시 생활에 지친 그는 연고도 없는 무안에 내려와서 살기로 결심했다. 처음부터 적응이 쉬운 곳은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기 위해 같이 밥도 자주 먹고 운동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씩 알게 되어서 이제는 동네 사람들이 ‘망운 드론’하면 우근씨를 다 안다고 했다. 그는 시골살이가 만족스럽다고 한다. “항시 마음이 좋잖아요. 창문 열고 바닷가 보고, 배타고 싶으믄 배 한번 타고 오고. 도시에서는 그게 안 되잖아요. 배 챙겨갖고 나오면 하루 종일 걸리고. 그날 다 날아가버리잖아요. 여기는 뭐 3분이면 바로 앞 바다인데. 그리고 마음이 조금 느긋해지는 것 같애요. 옛날에는 성질도 급하고 민감했거든요? 근데 이쪽 오면 침착해지고. 또 하나 좋은 점은 도시에 있으면 막 썬크림 바르고 글잖아요. 저 아침에 세수도 안코 나와요. 여기 나와서 혼자 작업하다가, 내가 퇴근하고 싶으믄 퇴근하고. 그거 하나. 건강도 안 좋았었는데 많이 좋아졌고. 도시에서는 막 스트레스 받고, 머리 빠지고, 내가 왜 도시에 있었는가. 진짜 너무 좋아. 멍하니 여기 앉아만 있어도 너무 좋고. 배고프면 라면 하나 끓여먹고 이런저런 눈치 안보고. 내가 놀기는 딱 좋은 것 같애요. 정붙이믄 사는 거잖아요.” 동네 주민들도 그에게 3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빨리 적응했다고 한다. 물론 그 말이 나오기까지는 우근씨의 노력이 컸을 것이다. 우근씨는 동네 주민들과도 가까워진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무안에 정을 붙인 그는 농사를 짓기도 한다. 작년에는 배추밭을 직접 해서 동네에서 제일 잘 키웠다고 한다. 올해는 양파 만생을 했는데 본인하고는 농사가 안 맞는 건지 양파값이 너무 안 오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일이 있는 날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또 쉬는 날에는 개인 작업실에서 기체를 만들고 조립하며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는 그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 바로 드론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잘 사용하지 못하는 주민들을 돕고 싶다는 것이다. “지자체 보조 사업으로 농민들도 드론을 사서 가지고 있는데, 그 교육도 안 받았는데 어떻게 쓸 거야 그걸. 창고에서 썩힌 게 더 많죠. 작년에도 한 30대 푼 걸로 아는데, 제대로 쓰는 사람은 한 서너개나 될랑가. 안타깝죠. 이게 한두 번 쓰다가 전봇대나 받고 이러면 끝나버리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무안에서 드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언제든 얘기하면, 제가 작업 공구가 꽤 많거든요. 어지간한 드론들 와도 고칠 수 있는 정도는 되니까. 와서 고치고, 교육도 받으면 좋을텐데. 이걸 어디다 말하고 다닐 데도 없고.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으니까 조심스러워요. 저는 장사꾼은 아니거든요. 제가 장사하려면 여기 있으면 안 되죠. 읍내에 가게 문 열어놓고 한 달에 한 번이나 갈라나.” 본인의 일도 바쁘지만 기회가 있으면 자신의 전문 분야인 드론에 관해서도 무안주민을 돕고 싶다는 박우근씨. 자신의 손으로 농산물까지 일구어낸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어엿한 무안주민이었다. 며칠 전에도 그는 배를 끌고 바닷가에 다녀왔다고 했다. 앞으로도 박우근씨의 무안생활이 순항하길 바란다. 저작권자 © 무안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넘어져도 괜찮아, 혼자 일어설 수 있어”

아이들의 따뜻한 길잡이, 무안읍 보육교사 김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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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한 아이가 잘 자라기까지는 각 가정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공동체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뉴스는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아니다. 출산율이 낮다고 앓는 소리를 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이 사회는 아이를 낳아 기르기 좋은 환경인가? 한 아이가 성장하기까지 곁에서 보육을 하는 사람들은 충분한 존중과 대우를 받고 있는가? ‘노키즈존’이라는 팻말을 거는 업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육아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맘충’이라는 용어는 인터넷에 유행어처럼 번졌다. 사람들은 평소 아이 양육자나 보육교사를 위한 제도 개선에는 관심도 없다가, 가끔 보육교사의 학대뉴스가 터지면 벌떼같이 몰려들어 욕을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결국은 가정내 주 양육자와 아이를 아침부터 오후까지 보살피는 보육교사들에게만 책임이 전가되어 아등바등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험난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5월은 푸르고, 아이들은 자란다. 그 아이들 곁에서 매일을 함께하고 있는 교사 김영신씨를 만나보았다. 김영신씨가 맡은 아이들은 총 네 명. 모두 48개월 미만의 유아들이다. 북위에 쌀알을 올려두고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영신씨는 아이들이 놀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또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어린아이들은 집중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여러 가지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집중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능숙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김영신씨는 원래부터 선생님인 채로 태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처음부터 교사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첫째를 낳을 때까지는 대기업에 다니던 김영신씨는 교직에 계시던 아버님이 퇴직하시면서 고향인 무안에 내려오게 됐다. 무안에 내려와 학원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유아교육에 관심이 생겼다. 바삐 일을 하는 와중에 방송통신대 유아교육과를 마치고 실습과정에서 현재 직장인 어린이집을 만나 15년째 일을 해오고 있다. 그가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이집이 지향하는 방향과 그의 교육 가치관이 통했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하며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었다. “저는 이 일이 재미있어서 했어요. 원장님이 어린이집을 운영하시는 게 돈이 목적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주성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고, 아이들이 행복한 어린이집을 지향하기 때문에 교사한테 전적으로 활동들도 맡겼어요. 교사도 아이들도 모두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이 좋았고, 아이들이 활동을 통해서 사고력이 커지고, 자기표현도 잘하는 모습으로 자라는 것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아이들과 있다 보니 늘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다는 김영신씨는, 무엇보다 졸업한 아이들이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줄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연락이 왔어요. 선생님 지금 어린이집에 계세요? 저 찾아가도 돼요? 하고요. 저도 아이들을 다 기억하는데, 아이들도 저를 기억하는 거죠. 졸업한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잊지 않고 많이들 찾아와요. 또,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뿌듯해요. 두 살은 걸음마를 시작하고, 언어를 배우고. 세 살 때는 기저귀를 떼고. 어릴 때부터 7살까지 쭉 다니니까, 커온 과정을 싹 보죠. 6살 아이가 흔들다리를 건너는 것을 정말 무서워했거든요, 근데 결국 건넜어요. 그 아이가 세 살 때부터 성장하는 과정을 계속 봤기 때문에, 무서움이 많고 그런 걸 다 아니까. 발전하면서 커나가는 것을 보면 막 언제 저렇게 컸나? 대단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그게 즐거움이죠.”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제일 중요한 지점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사랑을 많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랑을 많이 주는 것이 중요해요. 많이 안아주고, 칭찬도 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주려고 하죠. 아이들이 자존감을 키울 수 있게. 요즘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아요. 고집을 피워요. 부모님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줘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것을 자존감을 키워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해야 해요. 15년 전 7세 아동하고, 지금의 7세 아동은 크게 차이가 나요. 옛날에는 생선도 한 마리 씩 주면 애들이 다 발라먹었어요. 김치도 다 먹었죠. 지금은 아예 안 먹어요. 양도 적고 편식도 많이 하고 채소도 거의 안 먹죠. 양보하고 이런 것들이 좀 부족한 경향도 있고요. 그래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교육자들의 역할이라고 했다. ‘넘어져도 괜찮아, 혼자 일어설 수 있어’라고 하면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아 한다고. 다치지만 않으면 혼자 알아서 이겨내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스스로 터득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경험을 통해서 배워요. 지금 교육은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없애버려요. 평가인증하면, 완구나 물레방아, 테이프, 글루건. 아무것도 못 주게 해요. 근데 아이들은 스스로 조심해야 되는 것을 6~7세 되면 다 알아요. 제도가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게끔 만드는 경향이 있죠. 바깥놀이하는 공간이 원래 다 모래였고 흙밭이었어요. 원래는 지금쯤 되면 맨발로 놀았어요. 땅에 수로도 만들고 놀았었는데, 평가인증을 하면서 바꾸라고 하더라고요. 아래도 타일 같은 것을 깔라고 해서 깔았어요. 근데 이제 바깥놀이에 신발을 벗을 수가 없어요. 바닥이 너무 뜨거워서 발을 데어요. 애들이 정말 발로 뛰고, 물 뿌려서 밟고 놀고 씻고 했는데, 평가인증을 하는 사람들은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았나? 탁상공론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죠.” ‘유성아, 한 걸음! 한 걸음!’ 이제 막 걸음마를 떼려는 아이는 김영신씨의 응원에 따라 걸음을 내디뎠다. 넘어질 듯 말 듯 하면서도 ‘이뻐~ 유성이 한걸음! 천천히 그래!’ 하는 말에 곧바로 중심을 잡았다. 어른들의 역할은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김영신씨의 교육철학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화창한 5월. 아이에게 두 팔을 벌려 활짝 웃는 김영신씨의 미소가 따사로운 햇살처럼 어린이집을 비추고 있었다. 저작권자 © 무안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안읍 옛 시장터에 복합문화센터...주민들의 생각은?

소통없는 형식적 의견수렴 불만, 장터 정체성 살렸어야 주차난 문제는 글쎄...인구유입 기대감에는 긍정 반응도

무안읍 옛 시장터에 복합문화센터...주민들의 생각은?

무안군 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옛 오일장 장터 부지(무안읍 성남리 813-2외 5필지)에 복합문화센터와 보건소 LH행복주택 아파트가 들어선다. 무안군 지역개발과에서 발표한 조감도에 따르면 복합센터는 지하2층과 지상6층, 보건소는 지하2층과 지상4층, LH행복주택은 지하1층과 지상 15층으로 건축될 예정이다. 복합센터와 보건소의 공영주차장은 복합문화센터와 보건소를 합쳐 총 278대를 수용할 계획이다. 복합문화센터 부지 바로 근처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인근 상가주민들의 의견은 어떠할까? 직접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지역사회의 특성상 신상 특정이 되기 쉬운 환경이라, 인터뷰이들의 요청에 따라 대다수의 이름은 가명으로 표기했다. 관심과 우려 이전에 나온 것은 복합문화센터 증축계획 이전에 인근 주민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이 없었다는 지적이었다. 불만이 많아요. 의견 수렴은 형식적으로만 했는데. 항상 그런 식이에요. 다른 사업들도 그래요. 간판 정비사업같은 것도, 저기 중앙통에 있는 상가들은 다 지원을 해줬는데, 여기는 뭐 그런 것도 없어요. 시장도 갑자기 저쪽으로 빼버리고. 손님이 많이 줄었죠. 그쪽으로 가보려고 해도 이미 자기들끼리 다 정해놔서 안좋은 자리만 남았는데 그쪽으로 가겠어요?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 외지인이에요. 나는 여기서 세금도 내고 여기 살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들 의견을 잘 수렴해야지. (40대. 조현서) 군청 사업이든, 무슨 사업이든 같이 좀 하면 좋죠. 의견 수렴을 하긴 했겠죠? 하긴 했겠는데, 이쪽 지역 사람들한테 청취하거나 그런 것들은 별로 없었고요. 보통 이런 사업을 하면 관여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위주로 하는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추진위원회가 되고, 다 하는 거죠. 주민 공청회를 하려면 이 주위에 사는 사람들을 모아서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50대. 김호선) 매출과 주차난 문제를 염려하고, 기존 오일장을 이전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주민도 있었다. 오일장 이전으로 인해 매출도 줄어들었지만, 전통시장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는 지적이었다. 저기에 건물들이 생기면 상가 같은 것들도 더 생길텐데, 장사에 아무래도 안 좋은 쪽으로 영향이 있겠죠.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주차 문제가 복잡하거든요. 그래서 건물이 들어오면 걱정이 많죠. (47세. 윤희진) 이전한 전통시장을 여기에서 더 활성화시킬 생각을 했어야지. 건물이 들어오면 주차도 너무 복잡해지고요. 기존에 시장이라는 정체성이 있는 건데 거기를 왜 빼버렸는지 모르겠어요. 건물들을 많이 짓는데, 뭐, 보건소가 오는 건 좋지. 근데 건물만 그렇게 계속 짓는다고 해서 뭐가 되나. 관광객들도 와서 물어봐요. 여기 전통시장 없냐고. 옛날 시장 같은 거. 놀러오는 사람들도 전통시장의 모습이 살아 있는 것을 원하지, 지금은 그런 모습은 아니니까. (50대. 박영수)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가정하면 장사하기는 괜찮을 것 같은데, 교통 문제가 좀 있을 것 같아요. (42세, 서연주) 복합문화센터가 들어오면 기존의 복잡한 주차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인구 유입이 있어 매출에도 좋은 영향을 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뭐가 복잡하겠어요? 시골인데. 도시 같으면 모르겠지만. 군에서 서라아파트 앞쪽으로 도로를 편성하고 확장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앞쪽에 땅이 있더라고. 그래서 물어봤는데 군 소유라고 하더라고. 도로가 뚫린다는 얘길 들었지. 그래서 뭐 복잡하진 않을 것 같은데. 시골은 여기서 여긴데 복잡하고 차 막히고 그런 것은 없을 것 같은데요? 주차도 뭐 자기들이 편하게 생각하려고, 앞에다가 대놓고 그러는 건데. 그런 거만 안하면. 매출은 뭐, 사람 많으면 늘어나게 되어있겠죠. 매출이 늘어났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겠죠. (50대, 이석준) 복합문화센터가 들어오면 좋죠. 주차 문제도 오히려 주차장이 제대로 생기면 해결될 것 같은데. 지금은 다른 업장에서 자꾸 내 사업장 앞에 차를 갖다 대니까, 내 차도 내 가게 앞에 댈 수가 없어. (60대, 최영수) 새로 들어설 복합문화센터는 주민들의 우려를 잠재우고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주민들의 의견이 오고갈만한 충분한 공론장이 없었다는 의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읍내 중심지에 들어섬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무엇이 들어서는지조차 모르는 주민도 많았다. “형식상 의견수렴”, “자기들끼리”. 주민들 입에서 나온 단어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 지자체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무안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모래 숫자가 많은 곳이라 여기를 어떻게 할라는 놈은 다 죽는다 했어”

조금나루는 천혜의 자원...저걸 팔아버린 마을주민들이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요조금나루는 천혜의 자원...저걸 팔아버린 마을주민들이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요

“모래 숫자가 많은 곳이라 여기를 어떻게 할라는 놈은 다 죽는다 했어”

무안의 조금나루는 한때 주민들이 아끼고 자랑하는 명소였다. 지금은 초라하다. 입구에 ‘조금나루유원지’라 새긴 표석이 남아있을 뿐 관리한 흔적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우산각은 바닥이 내려앉아 있고 놀러온 사람들이 불을 피웠던 잔해도 그대로다. 애초에 국유지였던 땅을 마을에서 사들이고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은 사유지로 남았다. 관리가 부실한 건 주민들도 안다. 내심 마뜩찮지만 팔아먹은 탓으로 돌리면서 입을 다문다. 그래도 송현마을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참석한 분들은 조심스러웠다. 몇몇은 이름을 쓰지 말라고 했다. 주민1 ■ 주민들 의견을 들어본다고요? 내가 아무래도 나이가 좀 많고 그래서 조금나루에 대해서 더 알고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 조금나루가 옛날에는 나이 먹은 어르신들이 진짜 자기 집보다 더 아끼던 곳입니다. 어느 날 강아무개라는 외지 사람이 광업허가를 내갖고 모래를 퍼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모래를 못 퍼가게 할라고 아무리 막아보는데도 안되더라고. 내가 이장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를 모시고 3공구로 갔어. 가서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한테 이러이러해서 왔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뭔 과장을 나이롱 공장에서 따갖고 온줄 아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하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제일 밑에서부터 말해야 되는디. 과장한테 막 가니까 멍해버린 거예요. 그래서 뭔 말도 못하고 행정적으로는 도저히 이것이 안되는 쪽으로 얘기가 되니까 다시 돌아왔어요, 결국 여기 주민들이 데모를 해, 못 퍼가게. 그러면 무안경찰서에서 막어. 그러면 또 어쩔 수 없이 밀려와. 두어 차례 그랬어. 그런데 어느 땐가 해역사에서 나를 데리러 왔더라고. 그래서 가보니까 왜 그것을 못하게 하냐고 반협박적으로 나한테 그러더라고. 그래서 당신들 뭔 소리 하고 있냐고, 당신들은 군인이고 우리 주민들은 우리 살림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 뒤에 송현 어르신 중에 김아무개씨라고 있어. 그분들이, 자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안되겄다, 그래서 밤에 학다리까지 갔는디 경찰들이 있응께 이러도 저러도 못허고 삽 들고 간 사람, 호미들고 간 사람, 뭐 고무신 신고 장화 신고 이렇게 학다리 역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버린 거요. 청와대 간다고. 우여곡절 끝에 앞으로 모래 퍼가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는 조건하에 경찰에서 대준 버스를 타고 오니까 전남도에서 마을까지 데려다주면서 그 문제가 해결되었어요. 그런디 저것을 강아무개라는 사람이 잡종지로 등록을 시킨 상태였어. 모래를 퍼갈라고 필지를 나눠서 잡종지로 딱 해놨어. 그것을 국세청에서 이걸 부락에서 사라, 그렇게 통보가 왔어요. 그때 돈 6백만원인가를 주고 송현3리 앞으로 산 겁니다. 샀는데 왜 팔게 되었는가 그 원인까지 얘기를 해줄게요. 거기에 장사를 할라고 들어간 사람들이 있어갖고 부락에서 말하기를 50평만 갖고 장사를 하되 1년에 부락에다 임대료를 내라. 이렇게 하기로 했는데 이 사람들이 결과적으로는 면적을 더 차지하면서 임대료를 안주는 거여. 그래서 어르신들이 야 이래서는 안되겄다, 우리가 없어지고 나면 이 조금나루에서 장사한 사람들이 자기들 것 만들어 불겄다, 그러니 이걸 팔아버리자. 이렇게 얘기가 돌아갖고 저걸 팔아버린 겁니다. 진짜 참 아쉽지요. 팔아서는 안 될 것을 판 겁니다. 근데 지금에 와서 저도 조금나루에 한번씩 내려가 봅니다만, 옛날에는 저 조금나루가 사람이 살 곳이 아닙니다. 짐승이 살아야 돼. 해당화도 많았는데 없어져불고 선인장도 많았는데 관광객들이 전부 다 파가불고 그래서 없어져부렀어. 그래서 내가 이장할 때 면장하고 얘기해갖고 해당화 서식지를 만들었어요. 지금도 해당화는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려가 보면 이런 생각만 듭니다. 왜 그러냐? 이놈의 사람들이 주말이면 앉을 데 설 데가 없이 꽉 차부러요. 갈 때 깨끗허니 치워놓고 가면 되는데, 그저 자기네들은 치운다고 치우겄지요. 그렇게 아무데나 놔두고 미화원들한테 실어가라고. 미화원들은 규격봉투도 아니고 뭔 마대에다가 담아서 쌓아놔버린 것을 실어가겄어요? 그래서 그런 것이 아쉽고, 부락에서는 이미 팔아부렀는디 아쉬워도 소용없고. 다만 저런 좋은 자연경관을 좀 깨끗하게 사용하시면 좋겄다는 그런 마음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땅을 매각한 이후에는 관리가 마을주민들의 몫이 아니고 땅 임자가 관리를 해야 되는데, 관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네요. 현 소유자도 무슨 생각으로 땅을 저렇게 방치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상태가 이렇고, 또 보시면 알겠지만 낙지공원을 조성하고 노을길 공사도 하고 있잖아요. 그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주민2 ■ 그것은 저희들이 볼 때 명칭을 해안도로라고 해놨는데 절대 이건 해안도로가 아니라 농로밖에 아니여. 해안도로라면 바다를 끼고 계속 돌아가야 해안도로지. 엄한데로 돌아서 이쪽 저쪽으로 왔다갔다하게 하는 것은 해안도로로 맞지 않아요. 낙지공원 같은 것을 조성해서 관광객들이 많이 오게 할라고 하는 것은 알겠는데, 저희들이 볼 때는 그런 걸 개발하는 것을 좋게 안 봅니다. 왜? 사람들 와봐야 쓰레기만 모여. 쓰레기장 밖에 안된다는 거여. 사람이 많이 오게 되면. 그래서 그 전과 같이 좀 깨끗하게 해야 돼. 조금나루에 대해서는 솔직히 얘기해서 거기가 뭐 쓰레기가 가득 차든 말든 우리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음식물이나 뭐나 쌓여있다 보면 우리 부락까지도 공기가 오염되고 좋지 않겠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을 빨리 치워주고... 큰 호텔을 짓는다는 말도 있어요. 그런데 뭘 짓더라도 좀 깨끗한 공간을 만들어야지, 더러워지면 우리 주민들만 피해를 보지. 사실상 넘어가부렀기 때문에 할 말은 아니지만. 주민3 ■ 전체적으로 우리 땅이 아니었고 옛날에는 절반이 국유지였거든. 근디 그것도 사실상 우리가 권리를 찾지 못하고. 우리가 몇 년 전에 해양수산과를 갔어요. 이걸 우리가 임대를 받겠다. 받아가지고 우리가 이걸 해보겠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까 그 사업자한테 임대를 줬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다가 다 넘어가 부렀다더라고. 그러면 왜 우리가 소나무 심어놓고 다 해놨는데 그 사람들한테 군에서 넘겨부렀냐 이거야. 주민4 ■ 그 때 그것이 국유지였는데, 군청에서 전 군수 때 여기다 호텔도 짓고 개발을 한다, 그런 계획을 넣어가지고 했기 때문에 수의계약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악 4천평인가 그것을 계획을 했는데, 그때가 좀 오래됐잖아요? 근데 아직껏 개발을 않고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이 모양이 되어버린 거요. 옛날에는 여기가 진짜 엄청나게 사람들도 많이 왔지만 그때는 군청에서 관리도 하고 그랬잖아요. 근데 그 이후로 전혀 관리가 안되야분다 이것이죠. 저기 해제 송계는 군청에서 싹 다 매입을 했어요. 그래서 거기를 개발을 하겠다. 그러면 이왕 조금나루가 개인한테 떠나갔지만 여기에다 계획대로 하지 않으니까 다시 군청에서 매입을 할 수도 있제. 거기도 매입했으니까. 거기는 여기보다 땅이 더 넓어요. 그래서 이런 방안들을 주민들이 제시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관광지로 다시 만들어지면 주민들도 거기서 어떤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도 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협의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해안도로 가다 보면 낙지공원 있잖아요. 그 앞으로 구조물을 쭉 내밀어 갖고 모래사장을 다 막아부렀어요. 그러면 그것이 옛날에 우리가 명사십리라고 안했습니까? 그래서 이런 것들은 망운 면민이나 송현 주민들이 의견을 냈어야 하는데, 군청에서는 자기들이 개발해 준다는 명분으로 그렇게 자연을 훼손시켜 버리면... 주민1 ■ 지금 생각하면 저걸 팔아버린 마을 주민들이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요. 왜 이런 곳을 우리가 팔았는고. 저 자리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와서 놀다가고 하는데. 이미 다 지나가버린 것이고. 주민3 ■ 관광객들이 많이 오면 주민들한테도 피해가 와요. 낙지나 석화나 이런 해산물을 채취해서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이 많단 말이요? 특히나 낙지는 탄도만 낙지가 유명한디, 보니까 사람들이 안에서만 노는 게 아니라 바다로 들어가요. 고동을 잡네 게를 잡네 하고 들어가는 사람이 어떤 때는 빽빽해부러. 언젠가 한바퀴 돌다가 ‘그렇게 하면 여기 벌어묵고 사는 사람들이 어쩌고 살겄소, 그렁께 들어가지 마시오’ 그러고 말았는디. 어찌되었든 간에 부락이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피해를 안보게끔. 사실 우리가 소득을 낸다는 것까지는 생각을 안하지만, 피해는 안가게끔 해야 합니다. 생각해보시오. 농사짓는 사람도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면 도로에 경운기 놓고 농약도 해야 된디 차사고라도 나면. 이런 현상이 나오게 돼요. 그래서 개인이 됐건 누가 됐건 빨리 활성화시켜야지 저렇게 계속 방치해버리면 부락에 무지 피해가 생겨요. 오래되면 될수록 좋지 않은 현상이 와요. 주민2 ■ 옛날에 저 도로가 생기기 전에, 방파제 만들어서 탄도로 들어가기 전에 그냥 자연으로 있을 때는, 동네 사람들도 마음대로 못 들어갔어요. 1년에 몇 번 들어가서 거기서 소나무를 간벌해갖고 부락에서 골고루 나눠서 불 때고 그랬어. 글안헐 때는 못들어갔어.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는 갈매기 알을 신차두(신발주머니)에다 한차두씩 주워갖고 오고 또 삐비를 엄청 뜯어오고 그랬어. 그러다 개발이 되니까 한가지는 사실 좋죠. 탄도 들어가는 뱃길도 좋아지고 편리해지고. 그렇지만 다 좋을 수는 없제. 개발을 하면 자연이 훼손되거든. 주민1 ■ 천년이나 만년이나 부락에서 갖고 있을 줄 알았는디. 저기가 원래 도로가 없었어요. 가운데로 물이 넘어. 그래서 부락민들이 음력 2월 초하렛날이면 삽을 가지고 모래를 쌓아올리고 그랬제. 이재현 군수랑 경찰서장이랑 한창 만조가 들 때 조금나루에 와주시오 해서, 보시오, 물이 처마밑까지 들어오는데 이대로 두면 부락이 뭐가 되겠습니까. 여기 사업을 좀 해주시오. 그래서 저런 돌담을 쌓은 겁니다. 그러기 전에 여기서 낙지축제를 했는데 한화갑씨가 와서 군수를 불러갖고, 이런 좋은 자리가 이런 상태로 되겄냐, 빨리 지방도로 승격시켜갖고 도로를 만들어라, 그래서 포장도로를 낸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포장도로도 안내고 했으면 조금나루 환경이 더 좋았을텐데. 좋게 만든다고 사정해서 길 만들어놓고 하다보니까 오히려 저기가 쓰레기장이 되어버리고 환경이 엉망 되어버리더라고. 주민3 ■ 호텔이나 뭐나 들어서면 그 사람들이 관리를 하겄제. 그런데 바다오염은 어떻게 하나? 오폐수가 전부 바다로 들어갈 것 아니여. 주민5 ■ 개인적으로는 무조건 반대지만 부락 입장으로는 찬성이요. 개인적으로 피해를 봤기 때문에 골이 깊어요. 내가 거기서 횟집하다가 나온 사람이요. 거기서 장사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내가 소나무 찍어놓은 것, 사진이 많습니다. 나오면서 이 소나무 사진 다 찍어놓고 느그들 한그루라도 건들면 무조건 민원 넣는다 했소. 그때가 2009년쯤이요. 그때 내 건물 포함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다 철거해부렀소. 화장실만 남겨놓고. 나는 소송에서 져갖고 이사비용도 못받고 나왔소. 그 사람들이 남은 국유지도 편법으로 다 사부렀어요. (낙지공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어떻게 저 모래사장을 침투해서 지어부렀을까. 나는 바다에서 낙지를 잡으면서 그걸 봤어요. 내가 낙지잡이 전문이요. 그쪽에서 보니까 뭣이 툭 튀어나오더라고. 아직 낙지 모양이 세워지기 전이여. 공사가 이상 모래를 어마어마하게 침범해불고, 저기는 도대체 뭔 빽이 있어갖고 저러냐 싶더라고. 주민1 ■ 낙지공원이라고 돈을 얼마를 들여서 만들었는가 몰라도, 아무리 좋게 만들어놔도 손님은 조금나루로 오지 거기는 안갑니다. 주민5 ■ 조금나루는 그 뒤로 발전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물론 최초 잘못은 우리 부락에 있죠. 조금나루를 팔아부렀으니까. 만약에 조금나루가 안 팔렸으면 아마 무안의 최고 자리로 발전했을 거요. 저런 땅 없어요. 소나무도 다 살리고 하면. 주민1 ■ 옛날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조금나루가 칼입니다. 저 너머가 범바위 이쪽은 범, 그러니까 바위하고 범이 침범해오고 싶어도 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못 온다 그랬어요. 그리고 조금나루는 모래 숫자가 많은 곳이라 여기를 어떻게 할라는 놈은 다 죽는다 했어. 그 말마따나 거기 들어간 사람들 하나도 성공한 사람 없어요. 주민5 ■ 이재현 군수 시절에 여기서 낙지축제를 했어요. 2회는 톱머리에서 하고, 3회는 또 여기서 했어요. 그때 군수가 이 말을 했어요. 조금나루는 천혜의 자원이다. 그 양반이 떨어지고 나서부터 우리 무안의 축제가 줄어들었어요. 낙지축제는 신안 압해도로 넘어가부렀고. 다음 군수 10년 동안 조금나루 죽고 톱머리 살고. 풍경으로는 톱머리가 잽도 안되지만, 그 뒤로는 톱머리가 살게 됐어요. 주민2 ■ 소유권을 가진 분이 조금나루를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가서 사정할 일은 아니지만. 군청에서라도 압력을 넣어서 관리라도 좀 해주면, 낙지나 해삼이나 오염이 덜 될 것 아니냐. 그런 것을 건의하고 싶네요. 저작권자 © 무안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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